보수 조카와 진보 삼촌, 유쾌한 생방송 설전…“해리스 박살” vs “우린 축제야”
”서로 사랑하고, 대화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제시, 당신과 말을 섞겠다는 대의원을 찾기 정말 힘들었는데요. 여기 뉴햄프셔 대의원 가운데 어렵게 한 명 찾았습니다. 바로 당신의 삼촌이에요!”
민주당 전당대회 첫 날인 20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1층에서 현장 생중계를 하던 폭스뉴스의 보조 프로듀서(PD) 조니 벨리사리오가 사회자 제시 와터스(46)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제시는 보수 성향 폭스뉴스의 저녁 시간대 간판 프로그램인 ‘프라임 타임(Prime Time)’을 진행하는 스타 방송인이다. 이날 벨리사리오가 마이크를 건넨 건 민주당 대의원이자 뉴햄프셔 주(州) 상원의원인 데이비드 와터스(74)였다. ‘보수’ 조카와 ‘진보’ 삼촌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낫냐,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낫냐를 놓고 생방송으로 설전(舌戰)을 벌였다.
데이비드가 먼저 방송을 중계하고 있던 카메라 너머 제시를 향해 웃는 얼굴로 “안녕, 제시!”라고 인사를 했다. 데이비드는 영문과 교수 출신으로 환갑이 넘은 2012년 정치에 입문, 뉴햄프셔주 상원에서 12년째 민주당 의원으로 있다. ‘제시의 삼촌이 된 기분이 어떠냐’ ‘정치 때문에 가족끼리 싸우기도 하냐’는 질문에 “제시는 어느 날 갑자기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진 게 아니니 우리 모두 가족”이라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화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고 했다.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에는 “싸우면 항상 제가 이기고 서로 놀리기도 한다” “이게 건강한 방식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대학 졸업 직후인 2002년 폭스뉴스에서 제작 보조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제시는 이 방송사의 간판으로 거듭났다. 조 바이든 정부를 줄곧 때리며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때 거친 발언으로 앤서니 파우치 당시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이 그의 해고를 요구하는 등 잇단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제시의 방송에선 ‘팝의 여제(女帝) 스위프트가 미 정부의 요원일 수 있다’는 음모론도 비중 있게 다루는데, 유머 감각을 겸비하고 있어 보수 진영에선 3년 전 퇴사한 강경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힌다. 반대로 진보 지지자들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데, PD가 데이비드에게 ‘언제부터 제시가 잘못된 건가’라고 묻자 “비비스 앤 버트헤드(Beavis and Butthead)를 보는 걸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90년대 방영된 애니메이션으로 ‘심슨 가족’에 비견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작품 곳곳에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풍자·비판을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시는 민주당 대의원으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추인에 일조한 삼촌을 향해 “이런 민주적인 절차에 참여하고 있는 게 자랑스럽다”면서도 “트럼프가 카멀라를 박살 낼 것이기 때문에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삼촌을 너무 사랑하지만 11월에는 그렇게 잘되지 않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자 데이비드가 “내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지금은 우리가 축제를 하는 시간”이라고 받아쳤다. 제시의 모친인 앤 와터스도 유명한 민주당 지지자다. 지난해 7월 제시가 황금시간대 방송 진행 자리를 맡았을 때 첫 회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해 “음모론의 토끼굴에 빠지지 말라” “나는 아들을 잃기도 싫고 소송도 원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자”는 유머러스한 말로 큰 화제가 됐다.
앤은 “바이든은 이제 충분히 때리지 않았냐” “헌터의 노트북은 너무 오래됐다”고도 했는데 이는 폭스뉴스가 바이든 정부의 실정(失政), 차남 헌터 바이든의 잃어버린 노트북에서 파생된 여러 논란을 지나치게 많이 보도하고 있다는 민주당 지지층의 문제의식을 유쾌하게 녹여낸 발언으로 해석됐다. 데이비드와의 현장 인터뷰를 마친 뒤 폭 뉴스의 또 다른 스타 방송인인 숀 해니티가 제시에게 “오늘 어머님은 안 오셨냐”라고 묻자 제시는 “아, 오늘 안 오셔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한 숨을 쓸어내렸다. 이날 두 사람이 벌인 설전이 소셜미디어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여기에는 “정치 때문에 가족이 갈라지는 경우도 많은데 삼촌이 너무 스윗하다” “정치적 의견이 달라도 가족 내 평화가 유지돼 너무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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