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발, 개척 정신보다 ‘두려움’ 앞서는 기업들

윤진호 기자 2024. 8. 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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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00대 기업 56% ‘AI 포비아’
인공지능(AI)의 학습 과정을 구현한 이미지 컷. /트위터

작년 7월 넷플릭스는 연봉 90만달러(약 12억원)를 내걸고 인공지능(AI) 관리자 채용에 나섰다. 당시 “AI가 밥그릇을 뺏는다”는 우려에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구인공고 게시판에는 여전히 고액 연봉을 제시한 여러 AI 인력 채용글이 올려져 있다.

넷플릭스의 이 같은 움직임은 AI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자신감’보단 경쟁자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에 “경쟁사의 AI 활용으로 우리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며 AI를 경쟁 위험 요소 목록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처럼 미국 대기업 두 곳 중 한 곳은 “AI가 회사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리서치 플랫폼 어라이즈AI에 따르면, 포천(Fortune) 미국 500대 기업 중 281사(56.2%)가 올해 연례 보고서에서 ‘AI 리스크(위험)’를 언급했다.

2년 전 AI 리스크를 언급한 기업이 49사(9.8%)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AI에 공포감을 느끼는 기업이 2년 사이 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쟁사의 AI 개발·응용 속도에 발 맞추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할리우드 영화ㆍ방송 작가들이 작년 5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영화사 파라마운트 픽처스 스튜디오 앞에서 총파업 시위를 하고 있다. 당시 WGA 협상위원회는 넷플릭스 등과 임금 인상 교섭을 벌였지만, 전날 최종 결렬되자 파업에 돌입했다./연합뉴스

◇AT&T “AI 유해 정보, 평판에 부정적”

기업 연례 보고서에서 AI를 언급한 미국 기업은 2022년 128사에서 올해 323사로 늘어났다. 즉 AI를 언급하는 기업 중 AI를 위협이라고 본 기업은 2022년 38.3%(128사 중 49사)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그 비중이 87%로 치솟은 것이다. ‘생성형AI’를 언급한 기업은 2년 전 한 곳도 없었는데, 올해는 108곳이나 됐다. 생성형AI를 언급한 기업들 역시 대부분 이를 ‘위험요인(75사)’이라고 지적했다. ‘리스크와 기회’를 동시에 언급한 곳은 24사, ‘기회’만 언급한 기업은 9사에 불과했다.

여러 업종 중 AI를 위험요인으로 지목한 기업이 가장 많은 산업은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91.7%)였다. 이어 소프트웨어 및 기술(86.4%), 통신(70%), 헬스케어(65.1%), 금융(62.7%) 순이었다. 디즈니는 연례보고서에 AI 관련 규제가 아직 미완성 상태인 점을 언급하며 “기술 발전이 지적재산권 활용 등 기존 사업 방식을 여러 측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명시했다.

데이터 취급량이 많은 통신업계는 주로 AI로 산출되는 결과물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부담스러워했다. AT&T는 “AI는 비공개 정보나 비밀 정보, 편향된 데이터 활용, 지적 재산권 침해로 우리 명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토로라는 “AI가 항상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불법적, 편향적, 유해하거나 불쾌한 정보를 포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는 AI 불확실성 대응을 위해 비용 많이 들 수 있다는 점을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삼성 “AI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 대응할 것”

이처럼 기업들이 AI를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유는 이미 AI 산업 일선에선 2~3년의 짧은 기간에 운명이 갈린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AI 가속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기술 혁신에 실패해 AI 경쟁에서 크게 뒤처진 인텔이 대표적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인텔의 영업이익은 237억달러(약 32조원)로 엔비디아(45억달러)보다 5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23년 엔비디아가 330억달러의 이익을 내는 동안 인텔 영업이익은 1억달러도 넘지 못했다. 결국 인텔은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윤지수 한국IBM 상무는 “AI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해 기업들도 충분히 준비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각 산업 후발 주자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선두기업들도 이제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픽=이진영

국내 기업들의 위기 의식도 커지고 있다.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졌던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반도체 부문 수장을 교체하는 등 AI 시대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14일 공시한 반기 보고서 등 최근 사업 보고서에서는 “AI 관련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사업에 대해 언급하며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 치열한 경쟁 환경에 노출돼 있다”며 “AI 등 기술 혁신이 중요한 경쟁요소로 부각되고 있는만큼 AI 기술을 기반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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