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희망 편이란 평가, 마음에 들어요

황지윤 기자 2024. 8. 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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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노우 헌터스’의 한국계 美작가 폴 윤

최인훈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고 중립국으로 향했다면 어땠을까.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 폴 윤(44)의 소설 ‘스노우 헌터스’(산지니)가 힌트를 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북한군 포로 요한이 주인공. 그는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중립국행을 택한다.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브라질에서 요한은 일본인 재단사 기요시와 일하며 이국의 땅에 정착한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맑고,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광장’의 희망 편 같은 소설이다.

작가 폴 윤. /ⓒPeter Yoon

2009년 데뷔 후 소설 다섯 편을 낸 폴 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재외 한인)’ 문제에 집중하는 작가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미 동부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그의 작품에 한국인 정체성은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지난해 출간한 소설집 ‘벌집과 꿀(The Hive and the Honey)’은 러시아 사할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국 뉴욕 등을 배경으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좇는다. 이 책은 권위 있는 영어권 문학상인 ‘더 스토리 프라이즈’를 받았고, 미국 타임지 선정 ‘2023년 최고의 소설 10편’, 뉴요커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국내 언론과는 인터뷰한 적 없는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11년 전 쓴 ‘스노우 헌터스’가 이제야 한국에 소개됐다. 소감이 어떤가?

“정말 기쁘다. 예술가로서 시간을 초월하는 작품을 창작하고자 한다. 열 살 넘은 이 책을 읽고 독자가 공명할 수 있다면 무언가 제대로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었던 할아버지의 경험이 소설의 출발점이 됐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과 폭력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의 삶을 포착해 그리고 싶었다. 나의 할아버지를 비롯해 그 시기 많은 이가 그래야 했을 것이다. 솔직히 할아버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단히 과묵한 분이었던 것 외에는…. 소설 쓰기는 상상을 통해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그를 좀 더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산지니

–최인훈의 ‘광장’과 비교하며 읽게 된다. 명준이 죽지 않았다면 요한 같은 삶을 살았을까?

“’광장’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런 비교가 아주 마음에 든다. 소설 작품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을 사랑한다. 나는 나를 변화시킨 어떤 책들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은 마치 편지를 쓰듯이, 그 책들에 답장하는 것이다.

–요한은 명준보다 훨씬 희망적인 선택을 하고, 요한과 기요시의 우정은 한·일 간 화해를 모색하는 시도로 보인다.

“역사 속 순간이나 역사적 사건을 마주할 때 어떻게든 희망의 빛 한 줄기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빚어내는 데 그 빛을 어떻게 쓸지 고민한다.”

–여백이 있는 서정적인 문장으로 영미권 문단에서 두루 호평받는다. 어떤 글쓰기를 지향하는가?

“최소한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자 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당신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 같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영향을 주는가?

“틀림없다. 하지만 내 안에는 여러 다중성이 존재한다. 내 삶을 초월해 뻗어 나가는 무수한 삶을 상상하려고 애쓴다. 나의 일부를 가져다가 낯선 상황과 시공간에 겹쳐놓을 때 책 속에서 마법이 벌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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