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 전략] 대치동 학원은 거꾸로 AI 학습법을 배워야 한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2024. 8. 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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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의대반’ 미적분, 논리와 철학 없이 결과식 기계적으로 외워
정답 존재하는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건 AI가 훨씬 잘해
게다가 요즘 AI는 자기주도·융합·창조 학습도… 대치동이 배워야
그래픽=이철원

인공지능과 반도체에 관한 전자공학의 가장 기초적인 과목이 ‘전자기학(Electromagnetics)’이다. 전기장(電氣場)과 자기장(磁氣場)이 서로 어떻게 발생하고 또 전파하는지 그 원리를 배우고 응용하는 연습을 한다.

이 전자기학에서 제일 기초가 되는 방정식이 ‘맥스웰 방정식(Maxwell Equation)’이다. 4개의 미분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방정식에 따르면 전기장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면 자기장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장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면 전기장이 생긴다.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빛의 속도로 공간으로 퍼져 나간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변화하는 자연 현상을 수학에서 ‘미분’으로 표현한다. 함수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변화율이 미분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에서도 전자의 상태를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미분 방정식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수학의 미분은 자연현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자연철학’을 담고 있다. 17세기의 철학자이자 수학가인 데카르트가 공간 좌표의 개념을 발견했고, 수학의 미분은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정립했다.

이렇게 미분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철학이 담겨 있다. 문제 풀이가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미적분을 초등학생 ‘의대반’ 수업에서 배운다고 한다. 미리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워야 하는 미적분 진도까지 모두 다 끝낸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히 결과식을 외우고 기계적으로 적용해 보는 것이다. 논리와 철학이 없다. 과정과 결과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 못한다. 이는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두뇌에 가해지는 고문이다. 정답이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것은 인공지능(AI)이 훨씬 더 잘한다. 실수도 없다. 이제는 오히려 거꾸로 인간이 AI에게서 학습 방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픽=이철원

현재 사용되는 AI의 기초적인 학습 방법이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어진 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보고, 정답과 비교한다. 틀렸으면 풀이과정을 끝없이 다시 고친다. 정답과의 오차를 정의하는 수학 함수도 정의된다. 오차를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수학 미분이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을 ‘역전파(Back Propagation) 학습’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정답이 있는 문제를 최대한 많이 연습해서 실수 없이 빨리 푸는 연습이다. 꼭 학원의 주입식 학습 방법과 유사하다.

다만 인간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진 GPU(그래픽 처리 장치)와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이 학습 과정을 반복한다. 기능적 계산에서 인간은 AI와 경쟁할 수 없다. 다음으로 AI는 좀 더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해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도 사용한다. 이미 잘 정리되고 요약된 교과서나 참고서를 활용해서 배우는 방법이다. 꼭 족집게 과외를 받는 원리와 같다. 효율적인 학습 방법이기는 하지만 확장성과 일반성이 부족하다. 참고서에 나온 내용을 넘어서지를 못한다. 여기까지는 학원 교육과 유사하다.

다음으로 AI가 사용하는 학습 방법이 ‘연합 학습(Federated Learning)’이다. 일종의 협력 학습 방법이다. 학교 수업에서 그룹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공동으로 발표하고 평가받는 방법과 같다. 학습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컴퓨터를 공유하거나, 학습 결과를 공유한다. 각자의 특성과 역할을 살리면서도 협동하여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각각의 휴대폰으로 나누어서 학습하고 그 결과를 한 군데 클라우드에 모을 수도 있다. 연합 학습 방법은 학원에서 밤늦은 시간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시행하기 어려운 학습 방법이다. 서로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수동적 주입식 교육과 크게 차별되는 대표적인 AI 학습 방법이 바로 ‘강화 학습’이다. 특히 자기 주도 학습이다. 바둑 AI인 알파고에서 적용한 학습 방법이다. 강화 학습에서는 학습자의 자발성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정답도 없다. 다양한 시도를 스스로 끝까지 시도해 보고 그 결과를 학습한다. 일종의 탐험 학습이다. 탐험을 위해 미리 정해진 지도도 따로 없다. 자발성과 호기심이 학습 동력이다. 끝까지 마쳐보는 집념과 끈질김이 필요하다. 그리고 끝까지 기다려 준다. 그 과정을 높이 평가한다. 매번 탐험을 마치고 나서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AI에게 성취감을 부여한다. 이 성취감은 ‘보상 함수(Reward Function)’라고 불리는 수학 함수로 표현한다. 노벨상을 얻기 위한 학술적 조건과 같다. 우리 학원이나 학교에서 가장 부족한 학습 방법이다. 모험할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AI의 꽃인 ‘생성 학습(Generative Learning)’이 있다. 생성 학습은 모방, 변형, 융합 그리고 창조의 4단계를 거친다. 수많은 모방 글쓰기, 모방 그림 그리기, 모방 음악 작곡하기를 통해서 창작 능력을 키운다. 이후에 주제에 따라 변형과 융합을 한다. 이상적인 창작 교육이라고 본다. 학습 과정에서 기존의 작품과 차별화될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이를 수학에서 엔트로피라고 한다. 융합과 창조는 학원 학습이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이다. 엔트로피와 같은 평가 체계도 없다.

AI 시대에는 더 이상 선행 학습, 시간 경쟁, 정답 맞히기 교육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호기심, 열정, 자발성, 그리고 창의성이 더 중요하다. 융합과 창조 그리고 협력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처럼 인간이 AI에게서 학습 방법도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아직 AI 학습에서는 인간 교육의 가장 근본인 ‘사랑’이 담겨 있지 않다. 사랑을 수학으로 표현하고, 인공지능이 사랑마저 학습받게 된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가 더욱 위협받게 될 것이다. 사랑도 미분이 될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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