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김철중]‘中 실리콘밸리’의 3700원짜리 마트 식당 ‘인기’… 주머니 닫는 中 청년들
● ‘中 실리콘밸리’ 사로잡은 초저가 식당
이틀 연속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30대 남성은 “회사 근처의 식당은 아무리 싸도 최소 25위안(약 4700원)”이라며 이곳의 저렴한 가격을 칭찬했다. 특히 원하는 음식을 골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라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실제 매장에는 직장인, 대학생들이 많았다.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또 다른 젊은 남성 또한 “가격이 싸고 음식 맛도 좋다는 소셜미디어 글을 보고 직장 동료와 같이 왔다”고 했다.
배식구 한쪽 벽에는 ‘시민들을 위해 신선한 재료로 좋은 한 끼를 짓는다’는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자체 공급망을 통해 대량으로 들여오는 신선한 식자재로 즉석에서 요리하므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질은 우수하다는 것이 마트 측의 설명이다.
이 마트가 직접 ‘박리다매(薄利多賣)’ 식당 운영에 나선 것은 계속되는 내수 부진, 온라인 쇼핑 및 모바일 플랫폼에 밀려 오프라인 대형 매장의 매출이 급감한 것과 무관치 않다.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와 생존 기로에 선 대형마트의 고육지책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얼어붙은 소비 심리에 유통업계의 ‘기념일 특수’도 사라졌다. 과거에는 ‘칠월 칠석(매년 음력 7월 7일)’을 맞아 많은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기류를 찾아보기 힘들다. 명품, 고급 액세서리 판매 등도 급감했다.
● 취업난·저임금에 씀씀이 줄여
현재 중국의 취업 준비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은 대부분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이후 출생자)’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 이후 출생자)’다. 2000년대만 해도 중국 경제가 매년 8%대 안팎의 고도 성장을 구가하면서 이들은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성인이 된 지금 초저가 제품과 식당, 할인 팁 공유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코로나19, 미국과의 패권 갈등, 외국인 투자 감소 등이 겹쳐 경기 둔화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취업난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6일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7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17.1%로 한 달 전보다 3.9%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 청년 실업률(5.5%)의 3배 수준이다.
서방이 중국의 통계 신뢰도를 문제 삼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각에서는 실제 청년 실업률이 이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 당국은 지난해 12월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서자 재학생을 통계에서 아예 제외하는 새로운 집계 방식을 도입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은 팍팍하다. 현지 교육컨설팅 업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대졸자의 평균 월급은 6050위안(약 114만 원). 또 대졸 취업자 절반 이상인 57.8%가 6000위안 미만의 월급을 받는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아파트 월평균 임대료가 5000위안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월급의 거의 대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셜미디어에는 신세를 비관하거나 현실을 풍자하는 젊은이들의 게시물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눕는다”는 뜻의 신조어 ‘탕핑(躺平)’이 회자됐다. 올해 초에는 잠옷 차림, 노숙자 같은 허름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인증 샷’도 쏟아졌다. 먹고살기 힘들고, 열심히 일해 봤자 받는 월급도 쥐꼬리만 한데 무엇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차려입고 출근하느냐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티셔츠 속에 몸을 숨기고, 두 손은 티셔츠 아래로 빼는 ‘새 흉내’ 게시물까지 등장했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불안한 미래와 취업 스트레스를 자조적인 게시물로 해소하려는 중국 젊은층의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 정년 연장 등에 거센 반발
중국 젊은이들의 신세 비관, 자조 섞인 풍자 등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국의 ‘정년 연장 추진’에 대한 거센 반발이 대표적이다.
현재 중국의 법정 은퇴 연령(정년)은 사무직 기준으로 남성 60세, 여성 55세. 세계 최저 수준이다. 당국은 지난달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하며 “고령화로 노동력을 확보하려면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은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한데 그마저도 장노년층에게 뺏기게 됐다”며 분노했다. 일부 젊은이들은 당국의 정년 연장 정책에 찬성하는 학자들을 거세게 비판하며 “이럴 거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글까지 게시한다.
당국이 최근 발표한 ‘결혼과 이혼에 관한 규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혼인을 위해 고향을 찾아 ‘후커우부(戶口簿·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의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올해 상반기(1∼6월) 중국의 혼인신고 건수는 343만 건으로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국은 혼인 건수를 늘리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간소화하겠다지만 정작 결혼 적령기의 청년층은 시큰둥하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취업난, 주거난 등 ‘경제’가 원인이지 행정처리의 번거로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수 젊은이들은 “진짜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꼼수’만 부린다”고 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불만이 누적되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로이터통신이 18일 “중국 청년층의 일자리 위기는 중국공산당의 지도력에 대한 시험대”라고 진단한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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