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 ‘증상 완화’ 넘어 ‘진행 늦춤’ 단계로… 127개 약 임상 중[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2024. 8. 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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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약 개발, 어디까지 왔나
치매 치료의 2단계 문 열어
진행 늦추는 약들 식약처 승인…진행 막는 3단계, 완치까진 4단계
약 하나 개발에 10년 걸리고 비용도 1조 원 투입돼 험난한 길
《최근 ‘스틸 앨리스(Still Alice)’라는 영화를 봤다. 성공한 언어학 여교수가 50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신의 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치매 진단을 받고,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기억에 남는 말들을 꼽자면, “나는 늘 잘 정의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지 않나”, “내가 평생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찢겨 나간다” 등이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나를 잃어가는 고통을 표현한 많은 장면은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전속력으로 달리던 삶에 갑자기 드리운 치매의 그림자를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절망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치매는 유전병은 아니다. 희귀한 경우이지만, 유전적 요인으로 치매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알려진 유전적 요인으로는 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Amyloid precursor protein), 프리세닐린1(Presenilin 1), 프리세닐린 2와 같은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데, 영화 속 앨리스는 프리세닐린에 유전적 변이가 있는 경우다.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치매는 ‘조기 발현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데 30대부터 50대 사이 젊은 나이에 발병할 뿐 아니라 더 빨리 진행되고, 자녀가 변형된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경우, 치매가 생길 확률이 100%다. 영화 속 맏딸이 검사 결과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을 확인한다. 반면 막내딸은 검사를 하지 않기로 한다. 확인한다고 해서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유전적 요인으로 아포지단백 E(apolipoprotein E·APOE)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는 ε2, ε3, ε4 세 가지 형태를 띤다. APOE 유전자의 ε4 형태를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지만 반드시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운증후군 유전자를 가진 경우도 나이가 들어 치매가 발병할 확률이 50% 정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치매는 유전적 요인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영화 속에서 앨리스의 말처럼, 치매의 진행을 막거나 완치하는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치매 치료는, 증상 완화 치료, 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 병의 진행을 막고 증상도 없애는 완치 등 네 가지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치매 증상을 조금 완화하는 약밖에 없었다.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와 같은 약은 뇌 내 아세틸콜린의 농도를 높임으로써 인지 기능의 저하를 다소 억제한다. 하지만 이는 증상을 완화할 뿐, 병의 진행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많은 제약사가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질병 조절제 개발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투자해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많은 약물이 승인받는 데 실패했고, 이는 치매 환자뿐 아니라 치료제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업계에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2021년 6월 7일 처음으로 아두카누맙(Aducanumab·성분명), 2023년 7월 6일 레카네맙(Lecanemab), 2024년 7월 2일에 도나네맙(Donanemab)과 같은 약들이 미국 식약처의 승인을 받았다. 이 약들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제로 분류되고, 단클론항체를 이용해 아밀로이드베타 플라크를 제거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으며, 정맥주사를 통해 환자에게 투입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기전을 통해 치매 진행을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약들이 127개가량 임상 시험을 거치는 중이다.

치매는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해결 방법이 당장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약물을 개발하고 그것이 환자에게 쓰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한다. 기초 연구를 통해 후보 물질을 찾아내고, 사람에게 시험을 해도 좋은지 승인받기 위한 많은 실험을 거치고, 실험에 성공하고 임상실험을 진행해도 좋다고 승인받으면 그제야 임상시험용 의약품이 된다. 그 후 실험을 설계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임상 1, 2, 3단계를 진행해야 한다. 1단계는 안전성만을 검증하고, 2단계는 후보 물질이 특정 질환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며, 3단계에서 환자 수백 명 내지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효능을 입증해야 한다. 많은 경우 개발에 10년 정도 시간이 소요되고 약 한 개 개발 과정에 비용도 1조 원이 넘게 투입된다. 지금은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2번째 단계 치료의 문을 막 연 상태이다.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협회에 환자로서 초대돼 연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치매로 인해 변화한 나는 바뀐 내가 아니라 나의 질병일 뿐이다. 다른 질환처럼 치매도 원인이 있고, 진행되는 과정이 있고, 완치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다음 세대는 이 고통을 맞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앨리스의 말처럼 치매는 원인이 있고 완치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완치의 종착점에 도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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