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도시 부산이 ‘소멸위험’이라니[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소설을 완성한 동네는 아내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남포동,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이 익숙한 거리에 있다. 해변에 가고 싶을 때는 관광객들보다는 러시아 선원과 이주 여성, 손자와 함께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로 북적거리는 송도에 가곤 했다. 지금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어쨌든 해운대보다는 송도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영혼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계획된 도로의 신시가지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옮긴 건 아무래도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송도에서 남포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한국 최고의 찜질방이 있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매우 크고, 고깃배가 떠다니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통창의 욕탕에 몸을 담그고 남항대교를 구경할 수 있다.
영도에서 태종대까지 이어진 해안의 중턱에는 포장마차 한 곳이 숨어 있다. 낚시꾼과 연인을 마주칠 수 있는 이곳은 내가 부산에서 제일 좋아하는 술집이다. 부부가 아니라 연인이라고 한 이유는 찾아가는 길이 꽤 까다롭기 때문이다. 절벽을 내려가 조약돌 해변을 한참 걸어야 하는데, 연인들만이 그 정도의 수고를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고에 따라오는 보상은 즉각적이다. 살얼음처럼 차가운 소주에 주인이 직접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먹으며 파도도 없이 반짝이는 바다 위로 떠다니는 배를 구경할 수 있다. 영도 끝자락에는 나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함께 데려가는 친구들까지 숙취 해소에 최고라고 극찬하는 복국 식당이 있고, 남포동의 골목 한편에는 어묵탕과 더불어 매운 양념과 광어를 뒤섞어 깻잎에 싸 먹는 ‘타다키’라는 메뉴를 선보이는 오래된 맛집도 있다.
나에게 부산은 관광 코스나 블로그 맛집이 아닌, 원주민들의 기억과 추억으로 엮인 장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아내보다 내가 더 부산을 깊이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내는 부산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내가 그동안 쓴 단편소설 중에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두 개나 있다. 그중 한 작품은 스페인어로 쓰였고 영어, 핀란드어, 일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나머지 한 작품은 2020년 부산 비엔날레에서 소개되었다. 이 두 작품은 연작으로 부산 출신의 한 사설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며 사건보다는 존재론에 중심을 둔 추리소설이다.
오늘 내가 부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나의 심장을 뒤흔든 뉴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부산이 공식적으로 ‘소멸위험’ 단계에 접어든 도시라고 한다. ‘소멸위험’ 단계라니. 부산 주민의 23%가 65세 이상이고 출산율은 극도로 낮다. 한 나라의 중소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다. 50년 뒤, 한국이 싱가포르처럼 하나의 도시권역(서울·경기)에만 인구가 밀집되어 타워 블록 같은 아파트에서만 살게 될 거라는 상상을 하니 끔찍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 진지하고 현실적인 이민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한국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예가 한국 대학에 등록하고 학위를 마친 후에도 한국에 머물 기회가 없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다. 대학에 4년 동안 돈을 내고 졸업하면, 학교로부터 그동안 수고했다는 졸업장을 받는 게 끝이다. 이들이 한국에 남아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에는 아직 한국의 여건과 여유가 부족해 보인다.
가끔, 이 땅에서 한국인들은 외국인들과 사는 것보다 로봇과 함께 사는 것을 선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몇 년 후 우리가 읽게 되는 뉴스에 ‘부산,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은 세계 최초의 도시’라는 제목을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람과 로봇의 결혼이 합법화된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될지도.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