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사회’에 저항하는 수리 공동체 곰손

이유진 기자 2024. 8. 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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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제로웨이스트 실천하는 곰손 운영자 6명 인터뷰
‘수리상점 곰손’을 지키는 이들. 왼쪽부터 혜몽(유혜민), 무민(손수민·인턴), 금자(고금숙), 깡(강희영), 자두(정명희), 밍키(엄민경), 성연(박성연).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수리수리 마수리.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수리상점 곰손’은 유행하는 ‘장소 힐링 소설’에 나올 법한 마법의 전파상이 아니다. 손재주 없는 곰손일지라도 스스로 수리하는 법을 익히고, 물건과 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쓰는 곳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마법 같은 일을 벌이는 곳이다.

제품을 수리하고 되도록 오래 사용하면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공동체인 ‘곰손’은 지구에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삶이 아니라, 쓰레기를 줄이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운영자인 ‘곰손지기’는 총 6명.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이자 ‘수리 일꾼’으로 거듭난 ‘명랑 중년’ 깡(강희영·52), ‘망원동 호모 쓰레시쿠스’로 유명한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 운영자 금자(고금숙·46), 지인들이 인정하는 ‘금손’으로 바느질 수선 과정을 맡고 있는 밍키(엄민경·45), 주부이자 아로마 전문가에서 손에 드라이버를 든 여자로 변신한 성연(박성연·57), 녹색연합 비상근전문위원 겸 알맹상점 매니저 자두(정명희·50), 다큐멘터리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내 몸이 증거다’를 만든 영화감독이자 환경운동가 혜몽(유혜민·31). 이들은 각자 사비를 털어 망원시장 한 귀퉁이 지하 공간에 가게를 열었다. 2024년 2월17일이었다.

수리수리 수리상점, ‘되는 주식’인데?

혜몽(유혜민)이 수리한 모니터로 게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곰손지기들은 망원동 명물이 된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에서 뜻을 함께한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자)로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알짜들은 주말이면 ‘힙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망원시장에서 넘쳐나는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을 했다. 이들 가운데 사람들의 ‘수리 본능’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곰손’ 설립을 추진한 사람은 혜몽이었다.

“2023년 알맹상점을 중심으로 ‘수리 워크숍’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성황을 이뤘어요. 열기만 하면 마감이라서 ‘이거, 되는 주식인데?’ 하는 느낌이 있었죠. (웃음) 계속 성공하니까 공간을 마련해야겠다 싶어서 ‘돈 있을 것 같은 언니들’한테 제안했어요.”

금자는 혼자 돈을 다 내겠다고 했다. 혜몽은 말렸다. “혼자 다 내면 권력관계가 기울어지잖아요.” 전화를 돌렸더니 다들 선뜻 ‘비자금’을 헐겠다고 말했다. 다짜고짜 가계약을 했던 장소를 덥석 잡았다. “놀면서, 재밌자고 하는 일”(금자)이었는데 “공부하고 노력도”(성연) 했다.

주말마다 여는 ‘리페어 카페’는 네덜란드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09년 암스테르담에서 문을 연 리페어 카페는 일회용 사회에 저항하려고 만든 공유경제 실천이다. 곰손지기들은 독일 물리학자 볼프강 헤클이 쓴 ‘리페어 컬처’를 함께 읽으며 내 몸을 움직여 직접 수리하고 되도록 오래 물건을 쓰는 일이 나와 공동체, 나아가 지구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기 워크숍 장면. 곰손지기 깡(강희영)의 설명으로 전기 작업에 관한 내용을 함께 공부하고 있다. 곰손 제공

‘곰손’을 움직일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금자는 “(기능이 떨어지는) ‘왼손’만 두 개를 가졌더라도 즐겁게 자기 물건을 고치고 쓸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물건을 끝까지 고쳐 쓰는 것이 가장 급진적이다!

이 공간의 핵심인 ‘수리 워크숍’은 아이폰과 맥북 수리, 공구 사용법과 전기 원리를 설명하는 ‘공구/전기 워크숍’, 바느질 수선과 그릇 수선(긴쓰기) 등이 있다.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인연으로 전문가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다. 우산 수리는 ‘스승님’ 곽성규(서울 서대문구 우산수리 봉사단 ‘황금손’)씨를 초빙했다. 숙련자들은 헌 우산을 고친 뒤 ‘호우호우’라는 브랜드를 붙여 판매도 한다. 애플기기 전문수리로 유명한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는 혜몽이 ‘당근마켓’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이 되어 아이폰·맥북 수리 워크숍 진행에 도움을 줬다. ‘수리 상담소’를 함께 연 망원시장 ‘메카전파사’ 사장님은 알고 보니 국가기능사였다.

곰손지기들도 각자 ‘수리 기능’을 새로 습득하거나 원래 갖고 있던 전문성을 발휘했다. 곰손지기 중에서도 ‘금손’이라 인정받는 밍키는 구멍난 패브릭을 메꾸고 수선하는 직조 바느질(다닝) 워크숍을 주로 하는데 ‘라사라 패션스쿨’ 6개월 과정을 이수해 동료 사이에서 “엘리트”로 일컬어진다. 밍키는 옷이나 양말 등 깔끔하게 수선된 사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삐뚤빼뚤 힘겹게 완성한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참여자들의 의지를 북돋우며 격려하는 스타일이다. ‘수리 생활’에 필요한 건 손재주나 기술보다 할 수 있다는 용기였다.

“치앙마이 자수라고 하는데, 원래는 인디언들이 직조해서 문양을 내던 거예요. 망원동 ‘죽음의 바느질 클럽’에서 먼저 워크숍을 해서 꽤 많이 알려졌죠. ‘곰손’에서는 보급형 직조 바느질 클럽으로 시작해서 뜨개질도 하고 있어요. 쓰레기를 줄이고 수선하는 삶을 사는 게 너무 뿌듯해요. 파타고니아에서도 의류 수선 서비스를 하지만 전문가가 해주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천지 차이예요.”(밍키)

재봉틀 워크숍을 주로 하는 자두는 재봉틀 경력이 벌써 17년이다. 이제 10대 후반이 된 자녀들이 어릴 때 형광증백제가 문제가 됐던 시기라 유기농 원단으로 기저귀며 옷가지를 직접 만들면서 재봉틀을 돌리게 됐다.

“재봉틀은 손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옷본대로 잘라서 붙이면 옷이 되거든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재봉틀 기계가 도입되고 여성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면서 미싱 회사에서 하는 강의와 차별점을 갖게 됐죠. 하하.”(자두)

곰손부터 금손까지, 필요한 건 용기

‘수리상점 곰손’을 지키는 이들. 왼쪽부터 성연(박성연), 무민(손수민·인턴), 금자(고금숙), 자두(정명희), 혜몽(유혜민), 밍키(엄민경), 깡(강희영).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스스로 “손재주가 없다”고 말하는 금자는 그릇 수선인 ‘긴쓰기’, 혜몽은 아이폰 수리, 성연은 아이폰과 소형 가전 수리, 깡은 전기 워크숍을 맡았다. 깡은 50년 가까이 조명업을 하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전기 메커니즘을 딸에게 설명해주느라 아버지는 직접 정보를 메모해서 건네주기도 했다. 딸에게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라고 권했고, 딸은 그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버지와 50년 만에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됐어요. 아버지가 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죠. 당신이 알고 딸이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노트 세 장에 빼곡히 쓰셨어요. 제가 하는 일에 쓸 수 있게 맞춤형 콘센트도 직접 만들어 주셨어요. 큰 선물을 받았죠.”(깡)

운영자도 모두 여성, 수리 워크숍 참여자도 대부분 여성이다. 특히 인기 높은 아이폰 수리과정을 진행할 땐 강사도 놀랐다. 아이폰 수리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과정엔 남성이 대부분인데, ‘곰손’에는 반대로 참여자 태반이 여성이었고 다들 실패하지 않고 자기 아이폰을 잘 고쳐서 돌아갔기 때문이다. 혜몽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이폰 수리과정에 여성이 몰리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핸드폰 안에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많아 사설 센터에 맡기는 것을 젊은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까닭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 참여자들이 물건을 분해하고 고치는 일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여성 참여자들은 환경운동과 ‘수리권’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다르다고 한다. 깡은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를 쓴 일본의 비전력제품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씨가 한국에 온 적이 있는데 그분도 본인이 운영하는 ‘비전력 공방’ 참여자들 가운데 3040 여성 주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여성들은 수선을 배우면 자신이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녀와 공동체에 전파하는 점이 다르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자두는 “반면 요즘은 재봉틀, 옷 수선을 배우는 바느질 워크숍에 뜻밖에 남성 참여자가 꽤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수리할 권리를 되찾자

‘곰손’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제품들. 헤어드라이어, 선풍기, 청소기, 저울 등.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으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흐름을 멈출 수 없고, 중요한 건 자본주의 사회 자체 개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자두는 “그런 걸 주장하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되물었다. 깡은 “생활 속의 ‘리사이클링’은 환경보호, 자원절약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곰손’은 생활 속의 단순한 작은 실천이 아니라 생산·소비·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실천을 구상한다. 깡은 “물질의 소비방식을 바꾸고 제품 산업의 재편이 필요한 이때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을 절약하면서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우리의 운동은 기존 운동과 다르다”고 말했다. 성연은 “‘수리권’이 없고 접근성이 떨어지니 제주에서도 광명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계획적 진부화’라는 개념이 있어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품 수리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소비해야만 사회가 굴러가도록 설계돼 있으니까요. ‘수리권’을 되찾기 위해 전국에 수리 접근 가능성을 만들고 직접 수리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성연)

유럽연합(EU)은 2024년 2월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수리를 촉진하는 ‘수리권’(Right to Repair) 지침에 합의했다. 순환경제를 촉진하는 뜻에서 휴대전화 등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소비자에게 수리를 요구할 권리를 주고, 제조사에 내구성 강화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제조사는 보증기간 이내 고장이 발생하면 교체보다 수리를 우선시해야 하고 소비자는 수리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 워크숍은 수리할 권리에 대해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요. 프랑스에 가보니 가전제품 수리 가능 점수를 매겨서 보여주는 ‘수리가능성 지수’가 있더라고요. 어느 정도 물건을 쓸 수 있고 부품은 어디까지 있는지 알려주는 지침이 필요해요.”(혜몽)

선풍기 고치던 사람들이 ‘격노’한 이유

곰손의 워크숍은 ‘수리권’에 관한 공부부터 시작한다. 곰손 제공

한국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순환경제사회법)이 2024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핵심이 되는 제17조 ‘제품 등의 순환이용 촉진’에 관한 내용은 비어 있다. 하위법령이 없기 때문인데, ‘곰손’은 이를 제정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곰손지기들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생산 단계부터 문화를 바꾸려고 한다는 점에서 ‘곰손’은 기존 운동과 큰 차이를 지닌다”라고 말했다.

“선풍기 수리 워크숍을 할 때 사람들이 막 화내는 거예요. 나사를 풀어서 안을 열 수 없게 본드로 붙여 일회용으로 만들어놓은 거예요. 정말 많은 사람이 분노했어요. 곰손은 제도적 변화를 만드는 게 목적이지, 단순히 기술만 가르치는 공방이 아니에요.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개인을 양성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금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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