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분쟁 속 협력…베트남 ‘대나무 외교’
남중국해 분쟁 공개적 쟁점화 안 해…필리핀과 대조
555㎞ 철도 건설·수출 편의 등 ‘우호 유지’ 실리 챙겨
또럼 베트남 신임 공산당 서기장의 중국 국빈방문 일정이 20일 마무리됐다. 로이터·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또럼 서기장은 전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14개 분야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를 잇는 555㎞ 규모의 철도 건설과 하노이 지하철 건설, 베트남의 코코넛·두리안 수출을 위한 검역 편의 등이 협정 내용에 포함됐다. 신화통신은 또럼 서기장이 취임 후 약 2주 만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베트남이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또럼 서기장 방중 기간 확인된 양국의 우호적 관계는 중국과 필리핀 간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다시 긴장이 불거진 것과 대조적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인 베트남이 중국과 협력하는 배경에는 베트남 특유의 대나무 외교 전략이 있다. 대나무 외교는 강대국 모두와 잘 지내며 실리를 챙기는 유연한 외교를 말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1950년 수교했으며, 2008년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은 이어 러시아(2012년), 인도(2016년), 한국(2022년), 미국·일본(2023년), 호주(2024년) 등 6개국과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베트남은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과 대립하는 국가들과 연달아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으며 ‘중국을 대체하는 제조업 기지’로 떠올랐다.
베트남은 그러면서도 미국과 가까워질 때마다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베트남을 국빈방문해 응우옌푸쫑 당시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서 양국 관계를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시 주석이 베트남을 국빈방문해 기존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우호적 관계에는 당 대 당 교류를 중시하는 구공산권 국가의 전략과 양국 지도자 간 인적 교류도 바탕이 됐다. 시 주석은 지난달 별세한 응우옌 전 서기장을 두고 “좋은 친구”라고 표현했다.
중국과 베트남 관계는 긴장도 적지 않았다. 베트남은 1969년 중·소 국경분쟁 당시 소련을 지지했다. 베트남이 1978년 중국이 후원하던 크메르루주의 캄보디아를 점령하자 중국도 군사를 보내 베트남을 침공했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과의 전투 끝에 남중국해 파라셀군도를 장악해 현재까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2014년 영유권 분쟁지에서 석유를 시추하자 베트남에서는 대대적 반중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7월엔 중국 측 구단선을 묘사한 장면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 <바비>의 자국 내 상영을 금지했다. 베트남은 중국의 경쟁국인 인도와 남중국해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러시아와 가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과 합동 순찰을 추진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베트남과 필리핀의 차이는 베트남은 이 같은 일을 거의 공개적으로 쟁점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트남 정부는 관영매체의 영유권 분쟁 관련 보도를 통제하며 인터넷의 반중 움직임 등도 검열한다고 알려져 있다. 2014년 충돌 이후 분쟁지역에는 해군을 배치하지 않고 해경을 보내 중국과 마찬가지로 ‘회색지대 전술’로 대응하고 있다. 보스턴 칼리지에서 국제관계와 동아시아 안보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 캉 부는 미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에서 베트남은 중국과 육로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육상 충돌이 부담되기 때문에 필리핀과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역시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베트남 두 국가와 대치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베트남에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대한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 동남아시아 프로그램의 연구원인 압둘 라흐만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은 군사적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필리핀과 베트남 분할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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