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서는 못 메울 자산 격차, 상속세 낮추면 더 벌어진다[세금은 죄가 없다]
상속세 최고세율 50%인 한국
수치만으론 세계 최상위 수준
주요국은 대신 소득세 비중 커
GDP 대비 한 6.6%, 미 12.5%
물가·상속 가액 오른 현실 속
일각 “인적공제 금액 올려야”
“완화 땐 격차만 커져” 반론도
“생전에도 소득세를 냈는데 죽어서도 세금을 내야 합니까.”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가 ‘불합리한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돈을 벌 때 이미 최고 45%의 소득세를 냈는데, 상속할 때 또다시 세금을 내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높은 세율도 상속세 인하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보다 높다. 프랑스(45%), 미국(40%), 영국(40%) 등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40%대이고 스웨덴·호주·뉴질랜드·노르웨이 등은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경제 규모에 비해 상속·증여세수 비중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 비율은 한국이 0.68%였다. 일본(0.51%), 영국(0.27%), 독일(0.24%), 미국(0.15%) 등 주요국보다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국보다 GDP에서 상속·증여세 비중이 큰 국가는 프랑스(0.70%) 정도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주요국 대비 높은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낮춰야 할까.
상속세 낮추면 소득세 높여야
대다수 경제학자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소득세보다 높거나 적어도 같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경제학회가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2022년 진행한 설문조사(34명 참여) 결과를 보면 상속세 최고세율이 소득세보다 높아야 한다는 의견이 35%, 같아야 한다는 의견이 32%였다.
김성훈 싱가포르 경영대 교수는 “불로소득으로만 구성된 소득의 상속·증여세율이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을 포함하는 종합소득세보다는 높은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했고,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속재산은 불로소득으로, 당연히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율이 같아야 한다는 쪽에서도 “상속·증여도 수혜자에게는 하나의 소득”(전병목 IBK기업은행 상임감사)이라고 했다. 반면 상속세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높아야 한다는 의견은 26%에 그쳤다.
만약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여준다면 소득세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소득과 소비에 제대로 세금을 부과하지 못할 경우,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시점에 과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하나의 세목만 보고 세율을 결정하기보다 생애주기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현행 소득세 과세 체계는 다른 국가에 비해 촘촘하지 않다. 2022년 기준 명목 GDP 대비 소득세 부담은 한국이 6.6%다. 이는 미국(12.5%), 독일(10.7%), 영국(10.2%) 등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상속·증여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 대부분은 우리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부과하는 셈이다.
상속세가 없는 국가로 꼽히는 캐나다(12.3%), 스웨덴(11.5%)은 GDP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우리보다 큰 폭으로 높다. 한국보다 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이 작은 나라 중 소득세 비중도 작은 나라는 일본(6.5%)밖에 없다.
이는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구간이 지나치게 높고, 각종 공제로 실효세율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은 한국이 35.3%(2021년 기준)로, 10%대인 일본과 호주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상속·증여세 공제 한도 조정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낮출 경우 100억원 이상 소수의 초고액 자산가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에 비해 공제 한도 조정 시 상대적으로 많은 계층이 직접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제제도 개편 필요 VS 자산 격차 키운다
상속세 인적공제 금액은 1997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인적공제액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높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등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 ‘상속세 세율 및 인적공제에 관한 개선 방안 연구’에서 1997년의 일괄공제 5억원을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2023년 일괄공제 금액은 8억4050만원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기초 공제금액 2억원도 현재 화폐가치를 반영하면 3억1260만원이 돼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OECD 주요국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공제액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상속세 실효세율을 낮췄다.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상속재산 가액이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물가 등을 고려해 피상속인의 상속재산 가액을 추계한 결과, 1인당 실질 상속재산 가액은 2000년대 이전(1966~1999년)까지 평균 7억20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2000~2022년)에는 평균 24억2000만원으로 3.4배가량 뛰었다. 2022년에는 평균 상속재산 가액이 39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가파르게 늘어난 상속재산만큼 과세 대상자도 증가했다. 2008년 이전까지 1%를 밑돌았던 상속·증여세 과세 대상자는 2022년 4.5%로 치솟았다. 여전히 과세 대상자는 전체 피상속인 대비 적은 숫자지만 소득과 재산의 축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베이비부머의 은퇴 연령과 맞물려 향후 상속·증여세 과세 대상자는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섣불리 공제 한도를 완화할 경우, 자산 격차만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정부의 세법개정안대로 자녀 1인당 공제액이 5000만원에서 5억원이 된다면 부인과 자녀 2명에게 17억원짜리 아파트가 상속되더라도 세금 한 푼 안 낼 수 있게 된다.
특히 상속·증여세 과표 구간 조정과 맞물리면서 보편적으로 증여가 많이 이뤄지는 최저세율 10% 구간을 꽉 채워 증여할 수 있는 금액이 성인 자녀 기준 1억5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늘었다. 이때 증여세 부담은 1000만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올해 1월부터 혼인 후 증여 시 개인당 1억5000만원, 부부 합산 3억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되는 점을 고려하면 세 부담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과 임재만 세종대 교수가 지난 4월 발표한 ‘20·30세대 영끌에 관한 실증분석’을 보면 2020~2022년 서울에서 집을 구매한 20·30대 중 한 해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40% 이상인 사례는 3.8%에 불과했다. 반면 가족의 도움을 1억5000만원 이상 받은 경우는 19.7%에 달했다. 이미 주택 시장에서 세대 간에 상당한 규모의 자산 이전이 이뤄진 셈이다.
홍 연구위원은 “소득으로 메워지지 않을 정도로 자산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상속·증여세 문턱을 낮춘다면 격차는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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