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상속세 감세, 어떻게 볼 것인가
철학자 존 롤스는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한 정의의 원칙은 누구도 자신의 출신 배경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태를 전제해야만 합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는 자신이 ‘금수저’가 될지 ‘흙수저’가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경우 누구도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세습되는 것을 정의롭다고 보지 않는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불운의 책임을 개인이 짊어지는 것이 정의일 수는 없어서다. 사적 소유의 기한을 개인의 일생으로 제한하고 상속재산은 공동체로 되돌려주자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미드의 문제의식도 맥락이 다르지 않았다.
상속세는 부의 무상이전을 과세의 계기로 삼는 재산과세다. 상속세와 소득세는 부의 집중을 완화한다는 이념을 역사적으로 공유해 왔으며, 소득세를 통한 재분배의 한계 탓에 형성된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에 대해 상속세가 과세되는 점에서 상속세에는 소득세를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 사망한 피상속인의 생전 소득에 대해 과세가 부족했다면 유산 상속인이 낼 상속세를 낮춰서는 안 된다. 한국은 상속세 부담이 큰 편이지만 소득세까지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 증여세 포함 상속세는 2021년 기준 OECD 평균(GDP의 0.2%)이 우리(GDP의 0.7%)보다 부담이 작지만 소득세를 더하면 OECD 평균(GDP의 8.5%)보다 우리(GDP의 6.8%)가 부담이 작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법개정안에서 상속세 과세표준(이하 ‘과표’) 구간과 세율 변화만 따지면 과표 3억원부터 30억원까지는 감세액이 1000만원에 그치는 데 반해 과표 30억원을 초과하면서 감세액이 누적적으로 커져 과표 50억원은 약 2억원, 과표 500억원은 약 47억원이 감세된다. 자녀공제도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예컨대 상속재산 60억원, 배우자 법정상속분 5억원, 자녀가 2명이라면 현행 규정보다 개정안에서 4억9000만원이 감세되지만, 다른 조건은 같고 상속재산이 10억원 이하라면 감세 혜택이 없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상속세 대상 비율이 오르고는 있다. 하지만 2023년 비율은 여전히 5.7%에 그친다. 5.7% 중에 과표 30억원 초과인 피상속인은 6.3%다. 5.7%에 6.3%를 곱하면 0.36%다. 이번 상속세 개정안의 혜택은 최상위 0.36% ‘초부자’에게 집중된 셈이다. 그런데 그 0.36%가 한 해 정부 상속세 수입의 80.7%를 부담했다. 그러니 개정안 그대로라면 줄어들 세수가 만만치 않다. 극소수 초부자들에게 혜택을 몰아주다가 조세국가의 역할이 더욱 위축될 판이다. 초부자들의 상속세 부담이 확대된 가장 큰 원인은 그간에 부의 집중이 심화된 데에서 찾아야 합당하다. 세제의 누진구조는 부가 집중될수록 세 부담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원래 그렇게 설계된 제도인데 제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갈아치울 일인가.
다만 기존 상속세제가 물가상승을 반영하지 않는 점을 감안해 지나치게 복잡해진 상속공제 항목들을 정리하면서 공제금액은 상향하고, 대신에 ‘완전포괄주의’(과세요건을 열거하지 않고 경제적 실질에 따라 포괄적으로 증여를 규정)를 실현함으로써 실효세율을 2021년 기준 8.7%로부터 끌어올리는 제도 개선이 바람직하다. 미세 조정은 하더라도 재정의 재분배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성을 이탈해서는 안 된다.
상속세에 대한 부유층의 작금의 거센 조세저항에는 조세의 사회적 효익과 증세정치의 비전을 여태껏 한국의 정부가 보여준 적 없는 탓도 있다. 흥정하듯 세금 얼마 깎아줄지부터 고민하지는 말자. 제대로 된 조세국가의 미래상부터 제시해야 순서가 맞다. 늦었지만 복지국가로 향하는 로드맵과 그 여정에서 재정총량 증가율, 사회지출비율, 조세부담률, 국가채무비율의 각 목표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부유층을 설득해 납세의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명분을 주려면 최소한 그래야 한다.
상속세에는 더 큰 비전이 필요하다. 향후 상속세는 소득세와의 관계를 고려해 조세체계의 정합성을 개선하는 전체 계획 속에서 개편하되 목적세로 발전시켜 미래세대를 위한 기금에 투자하는 방안이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어쩌면 그 길은 하버드대학 법학자 로베르토 웅거가 제안했던 ‘사회상속계좌’의 사상을 오늘 한국에서 구현할 소중한 기회인지도 모른다. 미래세대는 인생의 출발선에서만큼은 빈부 격차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줄어야 옳다. 1900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그대로 상속권은 기본권이 아니며 국가가 그것을 인정해준 덕에 비로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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