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패전, 오키나와에서는 진행형
8월 중순이 되면 일본은 추석과 비슷한 오봉(お盆) 연휴를 맞이한다. 전국 각지는 귀성객과 여행객으로 붐빈다. 패전이라는 과거를 직시하는 연휴이기도 하다. 8월15일은 ‘종전의 날’이기 때문이다. 정부 주최로 추도식이 열리고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어온다. 아쉽게도 가해국의 책임과 반성은 빠져 있다. 일본인들이 경험한 전쟁의 참상, 즉 피해자로서의 기억만이 전승된다. 하지만 전쟁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곳도 있다. 오키나와가 바로 그곳이다.
지난 13일, 오키나와국제대학에서 집회가 열렸다. 올해는 이 대학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발언에 나선 한 대학생은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미군기지 문제에 주목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기지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미군기지로 고통받는 오키나와의 현실을 지적했다.
최근 오키나와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군 범죄 때문이다. 작년 12월, 미군 병사가 16세가 채 되지 않은 소녀를 납치해 성폭행하는 범죄가 발생했다. 미군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상황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일본 정부가 범죄 사실을 감추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시민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 사실은 해당 미군 병사가 기소된 지 3개월이나 지난 6월에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오키나와현 당국이 일본 정부에 확인을 요청하자 그제야 범죄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도 미군에 의한 성폭행 미수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 역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1997년 미·일 양국은 미군에 의한 사건이 발생하면 주일미군은 일본 정부에 통보하고, 일본 정부는 이를 오키나와현에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오키나와는 배제되었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항변했지만, 일본 정부가 지키려고 한 것은 미·일 동맹과 주일미군이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키나와는 미군의 군사요충지이다. 일본 전체 토지 면적의 0.6%에 지나지 않는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 시설의 70.3%가 집중되어 있다. 지난해 오키나와에서는 최근 20년간 가장 많은 72건의 미군 관련 형사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오키나와에서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는 현실을 패전의 산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1972년 일본에 반환되기까지 오키나와는 일본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아 미군 범죄를 처벌할 수 없는 불평등한 지역이었다. 반환 이후에도 미군은 주둔하고 있고 현재도 불평등은 계속되고 있다. 공무수행 중에 행해진 행위라고 판단될 때는 일본 당국은 미군을 체포, 기소할 수 없다.
이를 규정하고 있는 미·일 지위협정은 1960년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오키나와에 대한 본토의 무관심과 구조적인 차별은 패전 79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키나와에 있어 전쟁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주변국의 고통은 물론 오키나와의 고통을 이해하고 분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과거 반성이 아닐까.
박진환 일본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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