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길 위에 늘 그가 있었다

김창효·박용필 기자 2024. 8. 2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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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문규현 신부
2008년 9월25일 전북 임실에서 서울로 향하는 17번 국도에서 오체투지 순례 중인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경향신문 자료사진
순례길 동행한 국어교사들 펴내
65일 삼보일배…400㎞ 오체투지
막힌 곳에 구멍 내려 ‘현장’으로
“너 어디 있느냐에 그만의 응답”

“스스로 지렁이를 닮으려는 사람.”

최근 출간된 책 <너 어디 있느냐>는 문규현 신부(79)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염된 세상에 숨구멍을 내고자 부단히 꿈틀거리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문 신부는 1989년 8월15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가한 임수경씨(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3학년)의 손을 잡고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사람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길 위의 신부’라고 부른다. “지렁이”처럼 ‘가장 낮은 길바닥에서 막힌 곳에 구멍을 내려 부단히 꿈틀거린’ 그의 행적 때문이다.

<너 어디 있느냐>는 그런 그의 행적을 담았다. 20여년 전 청소년기부터 문 신부와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그의 생각과 삶을 지켜봐온 전북 국어교사들이 펴냈다. 출판사 측은 “온 힘을 다해 끊임없이 걸어가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실천으로 바꾸고자 했던 그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20일 밝혔다.

그가 임씨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도 ‘막혀선 안 되는 곳에 구멍을 뚫고자 함’이었다고 책은 전한다.

문 신부는 1945년 1월1일 전북 익산 황등에서 부친 문범문씨(베드로)와 모친 장순례씨(수산나)의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5대째 천주교 집안으로 두 아들은 신부가, 한 명의 딸은 수녀가 됐다.

해방이 된 해에 태어났지만 그는 자신을 ‘해방둥이’가 아니라 ‘분단둥이’라고 불렀다. 1945년은 분단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분단으로 시작됐지만 통일로 마무리하고 싶어 길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3년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지만 1998년에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영어’의 몸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는 줄곧 ‘현장’을 지켰다. 2003년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으려고 전북 부안 해창갯벌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65일 동안 목숨 걸고 삼보일배를 했다. 2008년엔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를 이끌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지리산 하악단에서 파주 임진각 망배단까지 400㎞를 124일 동안 땅바닥을 기어서 갔다.

2005년 2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로 주소를 옮긴 뒤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을 했다. 2009년 10월22일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단식투쟁 중 쓰러져 의식불명, 사흘 만에 회복했다.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주임신부를 마지막으로 본당 사목에서 은퇴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대표,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사단법인 생명평화마중물 대표 등을 지냈다.

책의 제목 ‘너 어디 있느냐’는 문 신부를 필요한 곳에 쓰려는 하느님의 부름이다. 책은 “문 신부는 그를 원하는 곳이면 언제나 달려갔다. 달려가 힘을 보태기도 하고 그냥 곁을 지키기도 했다. 힘이 빠져 무엇을 어찌할 수 없게 되어도 그저 함께했다”고 전한다. “너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그만의 응답”이라고 했다.

김창효·박용필 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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