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로마자 표기법

김태훈 논설위원 2024. 8.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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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찬호와 박세리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유명해졌지만 많은 미국인은 둘의 성(姓)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박찬호는 ‘Park’을, 박세리는 ‘Pak’을 쓰기 때문이다. 현행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또 달라서 원칙대로 쓰면 ‘Bak’이 된다. 김씨도 ‘Kim’과 ‘Gim’이 혼용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름도 그런 혼선을 빚었다. 대구시와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 이름의 로마자 표기를 두고 다툰다는 뉴스가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 이름을 ‘박정희 광장’으로 바꾸며 표지석에 ‘Park Jeong Hee’라 쓰자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가 그가 생전에 쓴 ‘Park Chung Hee’로 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논란은 한국어 음운의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한국인은 자음 ‘ㄱ’ ‘ㄷ’ ‘ㅂ’ ‘ㅈ’이 초성에 오면 무성음 ‘k’ ‘t’ ‘p’ ‘ch’로, 모음 뒤에 오면 유성음 ‘g’ ‘d’ ‘b’ ‘j’로 발음한다. 분명히 다른 발음인데 한국인의 귀는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과거 우리 어문 당국은 실제 발음을 중시해서 부산을 ‘Pusan’으로, 김포를 ‘Kimpo’로 썼다. 박 전 대통령 이름도 ‘Chung Hee’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 표기법이 우리의 언어 감각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계속되자 2000년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해 무성음도 유성음처럼 쓰도록 했다. 그 후 Busan, Gimpo 등으로 쓴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Jeong Hee’가 맞는다.

▶로마자 표기법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일원역의 로마자 표기는 ‘Irwon’이다. 발음대로 쓴다는 원칙에 따라 ‘이뤈’을 표현한 것이라지만 외국인 누가 그렇게 읽겠느냐는 지적이 많다. 거북선(Geobukseon)도 ‘지오북세온’으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외래어 표기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오렌지’를 영어 발음에 가깝게 ‘아륀지’라 써야 한다는 주장도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한 나라의 말을 로마자로 어떻게 표현할지는 그 나라 언어 체계에 따라 정하기 나름이다. 중국은 대부분 나라가 ‘si’라 쓰는 ‘시’ 발음을 유독 ‘xi’ 로 적는다. 다만 로마자를 쓰는 대표 국가가 미국이니 영미권에서 발음하기 쉽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표기 방식을 통일해 혼란을 막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이름의 로마자 표기조차 통일하지 못해 다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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