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테크, AI 인재 확보 ‘쩐의 전쟁’
엔비디아, 올해만 스타트업 4곳 사들여…클라우드로 수익 모델 다변화
MS·아마존은 기업 사냥 ‘애크하이어’ 대신 스카우트로 연구팀 강화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AMD가 6조원을 넘게 들여 서버 제조업체를 사들인다. 서버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엔지니어 1000여명을 데려오기 위해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강자 엔비디아도 올해만 스타트업 4곳을 인수하는 등 거침없는 ‘기업 쇼핑’에 한창이다. 귀한 AI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억~수조원을 들여 회사를 통째로 구매하는 ‘빅딜’이 잦아지고 있다.
AMD는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서버 제조업체 ZT시스템스를 49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ZT시스템스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용 서버 컴퓨터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연간 약 100억달러(약 13조3000억원)의 매출을 낸다.
그러나 AMD는 서버 컴퓨터를 파는 데는 관심이 없다. 원하는 건 오직 ZT시스템스의 전문 엔지니어 1000여명이다. 인수 작업이 완료되면 AMD는 ZT시스템스의 서버 제조사업은 분리 매각할 계획이다.
AMD는 그래픽처리장치(GPU) ‘MI300 시리즈’를 앞세워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해당 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에 칩을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설계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AMD는 그 적임자로 서버에 대한 지식을 갖춘 ZT시스템스 엔지니어들을 택한 것이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ZT시스템스 인수를 통해 고객사들이 AMD의 AI 인프라를 보다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MD는 지난달 핀란드 AI 스타트업 ‘사일로AI’도 6억6500만달러(약 9200억원)에 인수했다. 유럽 최대 민간 AI 연구소인 사일로AI에는 박사 학위를 보유한 125명을 포함해 총 300명의 AI 전문가가 소속돼 있다.
엔비디아도 올해 4건의 인수를 마무리했다. 지난 4월과 5월 이스라엘 스타트업 ‘런AI’와 ‘데시’를 각각 7억·3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데 이어, 지난달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브레브데브’와 ‘쇼어라인’을 사들였다.
엔비디아는 하드웨어 GPU 판매가 대부분인 수익 모델을 개편하려 한다. 지난해 3월 출시한 ‘DGX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AI 인프라에 대한 접근을 돕고 개발자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슈퍼컴퓨터 서비스다.
잇단 스타트업 인수도 그 연장선에 있다. 브레브데브는 클라우드에서 AI 모델을 구축하는 플랫폼을, 쇼어라인은 데이터센터 내 문제를 수정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런AI는 클라우드에서 컴퓨팅 자원을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데시는 AI 모델을 구축·최적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거대언어모델(LLM) 등 AI 모델 전반을 다룰 줄 아는 개발자는 손에 꼽는다. 이에 자금력이 충분한 빅테크들은 필요 인력을 보유한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을 쓴다. 이 같은 M&A를 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e)의 합성어인 ‘애크하이어(acqhire)’라고 부른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AI 인재 유치에 대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애크하이어는 흔한 전략이 됐다”고 평가했다.
규제를 피하려고 기업 인수대금에 준하는 목돈을 쥐여주고 사람만 빼오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최근 각각 AI 스타트업 ‘인플렉션AI’와 ‘어뎁트’ 직원들을 대거 채용해 자사 연구팀에 배치했다.
미국·영국 경쟁당국은 ‘사실상 인수’나 다름없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행위가 기업결합 심사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 아닌지 들여다보고 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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