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취약층 예산 늘리겠다면서 ‘금투세 폐지’, 여당의 자가당착
국민의힘과 정부가 20일 내년도 예산안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취약층 예산 증액 방침을 밝혔다. 온누리상품권 발행액을 역대 최대인 5조5000억원 수준으로 늘리고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채무조정을 위한 새출발 기금 규모를 현행 30조원에서 4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을 기존 5000가구에서 7500가구로 늘리고 장애인 고용 장려금, 어르신을 위한 경로당 냉난방비 지원단가도 인상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약자 복지를 역대 최대로 강화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회복을 선도하는 건전재정 역할에 최대한 역점을 뒀다”고 했다.
하지만 세수결손이 지속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여당의 ‘복지 최대’ 방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재정 여력이 부족해 정부 지출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올해 상반기까지 국세 수입은 168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조원 감소했고 관리재정수지는 103조4000억원 적자다. 재정이 한정돼 있으니 정부·여당이 언급한 예산 증액을 실현하려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하듯 어딘가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취약층이나 차상위층이 그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에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긴요하고 그러기 위해 재정확충이 필수라는 누차의 지적에도, 여권은 ‘부자 감세’ 기조에 괴이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여당은 주식·펀드 등에 투자해 5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면 내야 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기 위한 정책토론회를 22일 열기로 했다. 부자들을 위해 연간 1조3000억원의 세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투세 납부대상은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한 14만명 수준이다. 이들은 내국인 주식보유 총액의 절반이 넘는 401조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초부자들이다. 쥐꼬리만 한 정기예금 이자에도 15.4%의 이자소득세가 부과되는 것과 비교하면 명백한 ‘부자 감세’다.
고물가·고금리로 서민들의 삶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에서 취약계층 보호는 당연히 정책의 최우선 순위다. 당정협의에서 밝힌 대로 서민과 경제적 약자들을 두껍게 지원하려면 재정확충이 필수이고, 증세가 어렵다면 추가 감세를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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