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계 달한 전력 공급, ‘수요 맞추기’ 대신 ‘새판짜기’ 나서야
여름철 폭염 여파로 최대 전력수요가 지난 19일 95.6GW(기가와트)로 최고점을 찍어, 지난 13일(94.639GW)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 들어 벌써 다섯번째 기록 경신이다. 하루 최대 전력수요가 90GW를 넘어선 날은 기록적으로 더웠던 2018년 8월에도 이틀에 불과했고 지난해에도 나흘에 그쳤지만, 올 들어선 8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9일을 기록했다.
최대 전력수요 90GW 이상이 ‘뉴노멀’이 된 것은 단순히 폭염으로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냉방기기 사용이 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의 전력소비 구조에서 가정용은 15%, 공공·상업용은 30% 안팎에 불과하다. 공장 등 산업용 전력이 전체 수요의 절반을 넘는다. 최근 몇년 새 전력 수요의 큰 폭 증가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전기차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2026년까지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도 데이터센터가 2029년에 무려 732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예상 소요 전력량이 49GW에 달한다. 경기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만 해도 2050년까지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GW의 추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대로라면 전력 수요는 앞으로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원전을 새로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용인 클러스터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만 원전 10기분이다. 기존 원전의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원전과 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려면 초고압 송전선을 세워야 하는데, 경남 밀양의 사례에서 보듯 지역 사회가 쉽사리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산업용 전력수요를 맞추는 데만 급급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참에 전력수급 구조와 원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판짜기’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발전소를 지방에 몰아넣고 거미줄 같은 송전망으로 전력을 끌어다 쓸 것이 아니라, 용인 클러스터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 업종들을 전력생산지로 분산해야 한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들은 올여름 폭염처럼 전력 수요가 폭증할 때에는 순환 가동토록 하는 등 전력 사용의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력은 원하는 만큼 무한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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