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5> 통영 민박 해산물 밥상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2024. 8. 2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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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직접 나가 잡아 오고 낚아 오고…싱싱함이 펄떡인다 어촌밥상 삼시 세끼

- 요즘 유행하는 1박3식 민박집
- 바닷가 마을의 삶 체험하며
- 대표적인 로컬푸드 진수 맛 봐

- 통영 연대도에 여장 풀었던 날
- 첫 밥상 메인요리는 잿방어 회
- 보말고둥·건해삼은 무쳐 먹고
- 돌문어·전복, 부드러운 숙회로
- 부추·양파도 인근 밭에서 따 와

- 아침상은 전복죽과 벵에돔구이

얼마 전 경남 통영 연대도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포구 주변 어촌 민박에서 하루를 의탁했는데, 요즘 꽤 인기 있는 일명 ‘1박 3식 민박집’이다. 1인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잠자리와 함께 어촌에서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차려낸 ‘어촌밥상’으로 삼시세끼를 준다.

어느 인기 TV 어촌생활 프로그램 덕분에, 하루라도 한적하고 여유로운 어촌 생활을 체험하고 즐기고 싶은 도시민이 늘고 있다. ‘어촌 삶’을 꿈꾸는 이들의 소박한 휴식 소망을, 조금이라도 충족해 주는 것이 요즘 어촌 민박의 콘셉트이다.

이들 민박은 어촌에서 하루를 지내며 낚시, 해루질 등 다양한 어촌 체험 공유와 함께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로 풍성한 밥상을 제공한다. 특히 이곳 어촌밥상은 대부분 인근 바다나 밭에서 제철에 나는 재료로 조리해 낸다. 제대로 된 지역 ‘향토음식’, 대표적인 ‘로컬푸드’ 밥상이라 할 수가 있겠다.

‘로컬푸드’는 소비 지역 인근에서 재배·수확·생산되는 식재료나 그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뜻한다. 그러니까 ‘로컬푸드’는 ‘향토음식’이 정의하는 여러 요건 가운데 주요한 기준 중 하나라고 할 수가 있다. 이 둘 모두가 ‘건강한 밥상’을 뜻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 식재료의 배타적 상표 권리를 인정·보호해 주는 ‘지리적 표장’ 제도 또한 향토음식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우는 제도라 하겠다. 구포국수, 흑산도 홍어, 영덕대게 등이 대표적이다.

경남 통영시 연대도 어촌 마을에서 받은 어촌 해산물 밥상이다. 민박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난 해물과 나물로 푸짐한 밥상을 차려냈다.


▮거를 게 없는 ‘자연 밥상’

연대도의 어촌 민박에서 여장을 풀고 뜨거운 몸을 잠시 바다에 맡긴다. 찰박이는 시원한 물결에 염천의 더위도 금세 힘을 잃는다. 바다에서 돌아오니 주인 아낙이 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차디찬 지하수로 몸을 씻고 어촌밥상을 받는다. 소박하고 단출한 듯 보이지만, 갖출 것은 제대로 갖춘 ‘풍성한 밥상’이다.

밥상 한복판에 여름이 제철인 ‘잿방어회’가 떡하니 자리하고, 그 주위로 ‘전복회’ ‘돌문어 숙회’ ‘가리비찜’ ‘멍게회’ 등속이 둘러앉았다. 함께 내온 ‘보말고둥 무침’을 보니 아까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너른 바위 주변으로 보말고둥이 빼곡했던 것이 생각났다.

보말고둥 천렵과 더불어 생선회를 장만한 생선도 바깥양반이 손수 낚시로 잡은 것이란다. 이렇게 주위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낚이는 대로, 제철에 나는 자연의 재료로 밥상을 차리니 무엇 하나 맛없는 게 없고 신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제철이 아닌 식재료는 말려두고 오래도록 조리해 먹는데, 그중 ‘건해삼 무침’과 ‘건 미역 초장 무침’ 등이 상에 올랐다. 마른 생선과 함께 어촌 마을 사람들이 즐기는 저장 식재료다. 집 근처 밭에서 나는 부추와 양파 등속으로 노릇노릇 바싹하게 부침개도 부쳤다.

‘잿방어회’를 직접 농사지은 꽃대 오른 상추와 곁들여 싸 먹는다. 한입 가득 바다 내음과 섬 밭의 싱그러운 풀내가 어우러져 흔쾌하기 이를 데 없다. 모든 반찬이 안주와 다름없어 밥은 제쳐두고 기분 좋게 소주 한 잔 기울인다.

금방 바위틈에서 끄집어낸 문어로 조리한 ‘문어숙회’는 쫀득쫀득 짙은 어향을 내고, ‘전복 숙회’는 부드러우면서 감칠맛이 거칠 게 없다. ‘가리비찜’은 달콤하면서 해물 내가 진동하고, ‘멍게회’는 쌉싸름하면서 짙은 향이 입맛을 다시기에 좋다.

‘보말고둥 무침’은 입안에서 오돌오돌 돌며 새콤한 무침 양념과 잘 어울렸다. ‘건해삼 무침’ 또한 꼬독꼬독하면서도 담박하게 입안을 다독여 준다. ‘미역 초장 무침’은 생선회를 한 점 먹은 뒤 입을 가시기에 아주 좋다. 새콤하면서도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이 경쾌하다.

이렇게 어촌마을 해산물 밥상을 일별하고 있으면 ‘생선 매운탕’이 상에 오른다. 칼칼한 국물이 진하게 입속을 채워주는 음식이다. 수저로 휘휘 저어보니 잿방어 서덜과 술벵이라 불리는 ‘용치놀래기’ 몇 마리가 들어앉았다. 이 또한 민박 바깥양반이 낚시로 잡은 거란다.

▮가장 건강한 향토음식

어촌 민박에서 맛본 전복죽.


식재료 산지와 밥상의 거리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했다. ‘푸드마일리지’가 짧아야 싱싱하고 건강한 밥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푸드마일리지가 거의 제로(0)인 밥상을 받고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참으로 호사롭고 호사롭다.

아침상에는 전복죽을 내온다. 전복죽 한 술에 어제의 숙취가 말끔하게 가신다. 고소하고 진득하니 입안에서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이다.

‘세모가사리’ ‘불등가사리’ 등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해초무침’은 새콤달콤하면서도 신선한 해감내와 살강살강한 식감으로 상쾌하다.

새벽의 갯바위에서 낚시해 잡은 ‘벵에돔’도 구이로 올라왔다. 한입 먹으니 파릇파릇 풋풋한 파래 향이 물씬 난다. 고구마 줄기로 담근 김치는 사각사각 입맛을 돋우고 ‘멍게 젓갈’ 한입 먹으니 입안 전체가 짭조름하면서도 개운하게 입가심이 된다.

우리 밥상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은 향토음식이다. 그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 역사와 음식의 유래 등이 그 지역 사람들과 관계 아래에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들 향토음식은 지역에서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그 지역민 사람이 먹는 그 방식으로 널리 먹는 음식이다.

도시인의 고향 향수를 자극하는 어촌민박과 해산물 밥상.

요즘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는 감이 있어 적이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어촌 사람의 삶과 문화, 의식주를 느낄 수 있고 어촌 소득에도 도움이 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슬로우 푸드’ 운동과 더불어 ‘슬로우 피쉬’ 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즈음이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바다 환경 오염과 어족 남획으로 고통받는 어촌을 위해, 지속 가능한 어업과 건강한 바다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전통 어촌공동체와 어촌 식문화 유지를 위해 벌이는 ‘슬로우 피쉬’ 운동. 그리고 어촌마을의 삶과 음식을 체험하게 해주는 어촌민박과 해산물 밥상. 이 둘은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촌 민박과 삼시 세끼 어촌 밥상은 넓게는 어촌과 도시 간 삶의 양식을 교류한다는 측면도 있고, 도시민이 어촌 생활과 식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기에, 꽤 유익한 휴식의 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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