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쏘아올린 회의록 논란…기록 없는 ‘배정위’, 행정 관례였다
“간호·한의대도 배정위 명단 비공개…의대만 예외일 수 없다”
“밀실행정”, “의대 배정위 존재하긴 했나”…불신 확산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회의록 없는 '의대 정원 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에 대한 의료계와 국회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통상 임시기구에 대해선 회의록은 만들지 않았던 정부 부처의 관례가 이번 의대 증원 정책을 통해 재조명되는 모양새다. 배정위 참여위원 명단은 물론 대략적 규모도 베일에 싸인 가운데 '밀실행정'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교육부는 "지금껏 배정위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고, 내용은 공개한 적 없다"며 행정 관례이자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배정위에 대한 속기 형식의 회의록은 애초 만들지 않았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3월 내년부터 증원될 의대 정원 2000명을 32개 대학에 배정하기 위해 배정위를 개최했지만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회의는 3월15~18일 세 차례 진행됐다. 이후 배정위 가동 닷새 만인 20일 각 의대에 정원 배정을 완료해 발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배정위는 장관이 의사 결정을 할 때 참고하기 위해 진행하는 자문기구"라며 "지금까지 유사한 배정위 모두 법령에 따라 진행했고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간호대나 한의대, 혹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헬스 등 첨단 분야에 대해서도 의대와 마찬가지로 배정위를 구성해서 정원 배정을 심사한다"며 "회의 안건, 회의자, 배정위원은 물론, 회의 결과조차 공개한 적 없고 각종 메모나 회의 자료는 파기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의대 배정위만 예외로 배정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회의록 작성, 회의 자료 보관 등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지난 16일 "(이번 의대 배정위에서) 부끄러운 거 없이 숨길 것 없이 정정당당하게 배정했다"면서도 "배정위의 회의록은 작성하지 않은 것이 관례로, 자세한 내용보다는 결과 요약한 부분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대의 정원 배정을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근거 법령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의료계는 2007~08년 교육부 전신인 교육인적자원부가 로스쿨을 출범시키기 위해 정원 등을 심의한 법학교육위원회 규모와 위원 명단을 공개했다며 이번 사안과 대조되는 점을 비판했다.
이에 교육부는 "법학교육위원회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법정 위원회지만, 의대 증원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결정하게 돼 있다"며 "의대 배정위는 비법정위원회로 공공기록물관리법상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회의록 행방 질문에…"부존재→파기→파쇄→부존재"
회의록 논란의 시작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부는 법원이 정부 측 손을 들어줬던 의대 증원 집행정지 법정 공방 과정에서 배정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정위는 법정기구가 아닌 장관의 자문을 위한 임의기구라는 점에서 공공기록물법에 따른 회의록 기록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교육부는 회의록 대신 주요 내용을 작성한 회의 요약본을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회의록 행방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면서 불신을 키웠다. 오 차관은 지난 16일 교육위·복지위원회가 연 의대 교육 점검 연석 국회 청문회에서 처음에는 "(회의록은) 배정위가 운영되고 (해당) 기간 중 (파기)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후 회의록 파기 사실에 대한 야권의 공세가 이어지자 "(회의록이 아니라) 배정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활용된 참고 자료를 최종 결과가 정리되면서 파쇄했다"고 말을 뒤집었다. 회의록은 처음부터 만든 적 없고, 회의 자료만 있지만 그마저도 파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쇄했다는 회의 자료도 청문회 막바지에 등장했다. 교육부는 당시 저녁 배정위 1~3차 회의 자료를 여·야 의원들에게 제출했다. 해당 자료는 배정위 회의 전 교육부가 배정위원들에게 배포한 것으로 증원신청서 심사지표 및 지표별 배점안, 대학별 배정 범위 및 배정안 등이 담겨 있다. 오 차관은 "행정적으로 진행된 과정에서 참고한 자료는 파쇄했다고 했는데, 파일로 보유하고 있는 걸 찾아서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주요 회의'도 기록 無…"배정위 존재 자체 불신"
이번 논란으로 회의록을 기록하지 않는 행정적인 관례도 재조명됐다. 또 배정위원 명단이 비공개라는 점에서 '밀실' 의혹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의에 참여한 인원조차 알 수 없기에 불신이 확산된 모양새다.
공공기록물관리법상 주요 정책 또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회의의 경우 회의록,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을 작성하도록 한다. 교육부는 배정위가 '주요 회의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배정위는 주요 정책 결정이 아닌 자문 기구에 그칠 뿐 의대 증원 규모는 복지부가 정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계는 각 대학의 의대 증원을 결정하는 배정위를 '주요 회의'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다. 의료계 측 대리인단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 장관과 오 차관 등을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인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이날 "공공기록물관리법상 주요 회의는 모두 회의록을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지만 교육부는 '배정위는 비법정위원회로 관련 법상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며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률을 잘 모르는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범죄 행위를 은폐, 증거를 인멸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애초 배정위 자체가 구성된 적 없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여야 안팎에서도 불투명한 행정 처리가 드러났다며 연일 질타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대학별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한 배정위는 누가 참여했는지도 모르고, 어떤 근거로 정원이 배정됐는지 알 수 없다"며 "독재국가에서나 봄 직한 밀실행정"이라고 지탄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교육위원장은 지난 국회 청문회 당시 "(회의록을) 줄듯 말 듯하다가 (파기됐다고 했다.) 국회를 조롱하고 우롱하는가"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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