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K팝의 저작권 관리 더 엄격해야

홍병문 기자 2024. 8. 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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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문화부장
K팝 그룹 둘러싼 저작권 논란과 구설 잇따라
다수의 협업 바탕으로 한 새 제작 시스템 영향
뉴진스의 '버블 검' 영국 재즈펑크밴드 표절 의혹
지속가능한 K팝 위한 엄격한 내부관리 시스템 필요
[서울경제]

서양 클래식 작곡가 가운데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행복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을 꼽으라면 이탈리아의 조아키노 로시니를 들 수 있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그가 작곡한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유럽을 뒤흔들었다. 메가 히트작 ‘세비야의 이발사’ 작곡을 10여 일 만에 끝낼 정도로 천재성을 타고났다. 베토벤마저도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부러워했다.

인기가 절정이던 37세에 그는 은퇴를 선언한다. 일부 음악학자들은 평소 미식가였던 로시니가 유럽 각지로 맛집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작곡을 그만뒀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그는 은퇴 이후 요릿집도 내놨다. 그의 이름을 딴 소고기 요리가 지금도 전해질 정도다.

조아키노 로시니

저작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임에도 그가 젊은 나이에 파이어족(조기 은퇴자)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폭발적인 인기 속에 주문받았던 40편 가까운 오페라의 계약금과 이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은 현명한 자산관리가 이유로 꼽힌다. 한 귀족에게 빌려줬던 거금을 떼일 위기에 처하자 스페인 마드리드 대주교에게 부탁해 돌려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보답으로 그가 작곡한 종교곡 ‘스타바트 마테르’는 천상의 선율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대에 작곡가들은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곡들을 쏟아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유명한 곡은 물론 자신의 곡을 베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작곡가에게 저작권이 생긴 것은 로시니보다 한 세대 이후인 주세페 베르디 시절의 일이었다. 오페라 ‘아이다’로 유명한 베르디는 최고 인기 작곡가가 된 후 계약금이 아닌 저작권을 보장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게 된다.

주제페 베르디

저작권은 크리에이터와 제작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는 화수분이지만 첨예한 분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큐피드’로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7위에 오르며 화제를 뿌렸던 K팝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와 소속사 ‘어트랙트’ 간의 분쟁에도 엄청난 저작권이 배경에 깔려 있다. ‘어트랙트’는 ‘큐피드’ 곡을 프로듀싱한 외주 업체 ‘더기버스’의 안성일 대표가 이른바 탬퍼링(계약 기간이 남은 아티스트를 데려가려는 목적으로 몰래 접촉하는 행위)으로 멤버들을 빼가려고 했고, 몰래 ‘큐피드’의 저작권을 사는 행위를 했다며 안 대표를 상대로 고소장을 내고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1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큐피드’의 저작권료는 소송에 엮여 지급이 중단된 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 멤버를 영입해 2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 사진 제공=어트랙트

세계적인 걸그룹 ‘뉴진스’도 저작권 논란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재즈 펑크 밴드 ‘샤카탁’은 지난달 뉴진스의 ‘버블 검’이 자신들이 2014년 발표한 노래 ‘이지어 새드 댄 던’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을 위반했다며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와 ‘하이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어도어’는 여러 대중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마디 정도의 멜로디가 비슷할 뿐 표절이 아니라고 해명하며 반박하고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결국 저작권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뉴진스./ 사진 제공=어도어
영국의 재즈펑크 밴드 ‘샤카탁’. /샤카탁 소셜미디어 캡처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K팝이 최근 표절 논란에 부쩍 자주 시달리는 이유는 과거와는 달라진 K팝 제작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여러 명의 작곡가에게 받아온 멜로디와 비트를 잘 버무려 귀에 짝 달라붙는 자극성 강한 곡들을 만들어낸다. 프로듀서는 여러 작곡가들의 멜로디와 비트를 잘 엮어내 깔끔한 히트작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런 K팝의 새 제작 시스템은 표절과 저작권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을 높인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로시니 시대에 통할 수 있었던 자기 복제나 유명 선율 우려내기 작업이 K팝의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만큼 작품성과 윤리성에서 더 엄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표절이나 저작권 검증에서 보다 치밀하고 깐깐한 내부 기준을 갖춰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팝이지만 윤리 문제에서 빈틈이 생기고 그 틈이 점점 벌어진다면 공들여 쌓아 놓은 K팝 금자탑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홍병문 서울경제 문화부장
홍병문 기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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