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 "AI가 창작 관념 바꿀 것…AI와 같이 살기 강요하는 사회"
[2024 미디어의 미래] 장강명 작가가 말하는 'AI 시대, 스토리텔러의 미래'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무가치해지는 게 내가 염려하는 시나리오"
"다같이 AI 거부하자며 연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기사를 쓰고, AI를 활용한 작품이 문학상을 받는 시대다. AI로 인해 세상이 편리해질 거라는 낙관 속에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AI 활용 능력이 우리 사회의 '계급'을 나눌 기준이 될 거라는 예측도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다.
장강명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AI로 인해 우리 사회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야생의 생태계”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장강명 작가는 AI가 문학, 예술, 언론의 개념을 바꿔버릴 미래를 우려했다. 그는 AI 기술로 인해 인간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의 의미가 사라질 미래를 보여주는 소설이 현실을 바꾸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강명 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장 작가는 9월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AI 시대, 스토리텔러의 미래' 세션 발표를 맡는다.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강연 주제가 'AI 시대, 스토리텔러의 미래'다. 스토리텔러 범위가 어디까지라고 보나.
“스토리텔러가 누구인지 물어본다면, 인간은 모두 스토리텔러라고 답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인생 자체를 서사로 파악한다. 우리의 자아 정체감, 역사 의식도 모두 스토리에서 나온다. 특히 현대사회에선 점점 더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지고 있다. 동네서점이 본질적으로 파는 것도 동네서점의 스토리다. BTS가 음악을 팔고 있나, 자기 성공 서사를 팔고 있나? 뉴진스 음악을 뉴진스 서사와 분리해서 듣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서사, 사회를 만드는 서사에 AI가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AI 발달로 문학계엔 어떤 영향이 있나? 작가로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
“문학은 아직 비교적 안전한 영역 같다. 최근 일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도 AI가 쓴 문장이 포함됐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챗GPT를 사용했다며 마케팅하는 소설집들이 꽤 있다. 물밑에서 AI를 활용하는데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어서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AI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 혼자 '다음 플롯을 짜봐라', '그럴싸한 비유를 만들어봐라' 등 몇 가지 실험을 해본 적은 있는데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은 이런 정도인데, 점차 발전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완성형이 등장할 것이다.”
-AI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할 수 없이 빠른 속도인 것 같다.
“점점 실력이 좋아지는 차원이 아니라, 갑자기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AI가 나올 거다. 나오기 전날까지도 알 수 없다. 아직은 나를 위협할 수준이 아니라고 해도 내일도 그럴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 요즘 알파고로 인해 바둑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관한 논픽션을 쓰고 있다. 알파고 이전에도 '딥젠고'라는 바둑 AI가 있었는데 사람 프로기사와 상대가 안 되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내 책에선 딥젠고를 '권투를 하는데 한 손으로만 싸워도 이기는 수준'이라고 비유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알파고가 나오더니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두게 됐다.”
-당장 닥쳐올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플롯을 잘 짜는 AI, 문장을 잘 쓰는 AI, 팩트체킹을 기가 막히게 잘해주는 AI 등 한 요소를 탁월하게 잘하는 AI가 나오면 해당 기능을 AI에게 맡기고 아직 AI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사람이 하는 식의 분업이 가장 예상 가능하다. 다만 AI가 무엇을 잘 할지는 모른다. AI가 잘하는 기능을 AI로 교체하는 협업을 한다고 하면, 해당 기능을 잘하는 사람은 불리해지고 해당 기능이 약점이었던 사람은 유리해진다. 즉, 스토리텔링 산업에 AI가 들어와 상업적 성과를 내고 AI 이용이 도움 되는 때가 되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 'AI를 안 쓰겠습니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할리우드 배우·작가 노조 파업이 떠오른다.
“파업 요구사항 중 하나가 생성형 AI를 사용해 시나리오를 쓰거나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해 배우들을 대체하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그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파업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해당 AI가 그리 상업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같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야 단결할 수 있지, 실제로 어떤 사람이 AI를 사용해 유리한 지점에 있다면 배우·작가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출판계는 영화·드라마 업계와 달리 분업하는 식이 아니라 대부분 혼자 작품을 다 쓴다. 시나리오 작가처럼 다같이 AI를 거부하자며 연대하는 일이 벌어지기 힘들다.
좋은 아이디어, 캐릭터가 있지만 문장이 별로인 소설가 지망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망생은 문장을 써주는 AI를 자신의 꿈을 이뤄준 '도구'로 인식할 거다. 워드 프로세서, 타자기와 다를 게 없는 도구라고 이야기하면서 AI를 반대해야 하는 명분 자체를 반대할 거다. 반면 본인의 모든 문학적 관심이 문장인 작가에겐 본인은 하루종일 걸려 쓰는 문장을 2초에 하나씩 뽑아내는 AI가 나온다면 AI는 재앙이다. 한 번 상업적인 용도가 증명되면 되물릴 수 없고, 업계가 공동으로 막아내는 일은 없을 거다. AI만의 특징이 아니라 모든 기술의 특징이다.”
-AI 활용 능력도 사회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다.
“특정 요소를 잘하는 AI가 나오면 그 AI 중심으로 산업 지형이 재편될 거다. 강제로 구조조정 당하는 사람이 생기는 동시에 AI 덕분에 이득을 봐서 지위가 높아지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리고 그들 모두 AI 활용 능력을 요구받게 될 거다. 나도 도태될 거란 불안감이 있다. 진짜 불안한 건 AI가 나오기 직전까지 내가 도태되는 쪽에 속하는지, 운 좋게 더 많은 자원을 갖는 쪽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AI와 인간은 협업하면서 공존할 수 있을까.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선보일 때 늘 최고의 스토리텔러들을 고용해 기술에 얽힌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을 한다. 애플 광고 보면, 항상 젊은이들이 애플과 함께 잠재력을 펼쳐 보이거나, 장애가 있어 하지 못하던 것을 애플의 기술 때문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등 좋은 스토리를 입힌다. 그래서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할 때도 좋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사회 기술에 얽힌 가장 안 좋은 이야기 중 하나는 (기술이) 사회를 쪼갤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절대 그 기술과 공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감이 좋은 '공존'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교묘한 스토레틸링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AI와 같이 살기를 강요받는 거다. 강요받는 공존도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 'AI는 등장했고, 죽지 않고, 되물릴 수 없고, 세상이 그렇게 됐으니 너도 알아서 살아'라고 하는 걸 공존이라고 해야 하는가.”
-글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사람이 AI를 활용해 등단했다면 어떻게 평가할 건가.
“아마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할지 규칙을 만들 것 같다. 윤리준칙은 잘 바뀌지 않는데, AI 관련 준칙은 쉽게 바뀔 것 같다. 정해진 규칙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이 사안이 규칙을 움직이게 할 거다. 결국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바꾸게 될 것 같다.
AI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감독이 디지털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해서 탁월하게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해보자. 그때는 '연기 지도'가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디지털 배우가 연기상을 받는다면, 기존의 배우가 연기상을 받는 의미와 달리 감독이 디렉팅을 잘했다는 의미의 연기상으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독자들이 AI로 디렉팅해서 나온 소설을 보고 깊이 감동하고 문학성이 대단하다고 평가한다면, 창작이 무엇인지 개념과 기준이 바뀔 수 있다. AI로 만든 작품을 창작으로 봐야 되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고, 창작의 개념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게 진짜 문제일 수 있다.”
-AI가 2초에 한 편씩 글을 쓰고, 누구든 AI로 글을 써내는 시대가 되면 글쓰기의 본질이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미술은 이미 그런 영역이 됐다. 200년 전까지는 시각 예술이란 말을 들으면 흰 여백에 사람이 손으로 그리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지나가면 나는 소리, 내가 하게 되는 체험 등을 다 시각예술이라고 부른다. 시각예술이라는 말은 그대로이고, 200년 사이에 내용물과 예술성이 가리키는 것이 바뀌었다. 사진기의 등장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진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대상을 진짜처럼 묘사하는 능력이 높이 평가받았는데, 지금은 진귀한 구경거리지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문학성이 가리키는 것도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렇다면 문학계는 AI 기술을 멈추고 통제해야 할까, 더 빨리 적응해야 할까.
“이런 미래를 막아야 한다는 쪽이다. 나는 AI를 반대하고, 설사 AI 기술이 나오게 된다고 하더라도 통제 방안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AI에 대해 걱정하는 건 아마 '터미네이터' 같은 AI, 내 일자리를 빼앗는 AI일 것이다. 두 가지에 물론 대비해야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AI가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적인 개념들을 바꾸게 될 거라는 거다. 문학이란, 창작이란, 언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AI가 우리의 답을 바꿔버릴 미래가 걱정스럽다.
요즘 바둑 기사들은 AI에게 바둑을 배운다. 그러면서 바둑을 다 똑같이 둔다, 기풍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알파고가 왜 이런 수를 두는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니까 그 앞에서 '바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무의미해졌다. 본인의 평생을 바쳐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뭔가를 보여줄 땐 예술일 수 있는데, 압도적으로 잘하는 AI 등장 앞에서 바둑의 예술성을 논한다는 게 우스워졌다. 알파고가 바둑의 예술성을 파괴한 셈이다. AI로 인해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무가치해지는 게 내가 염려하는 시나리오다.”
-SF 장르의 소설을 많이 쓰는 이유도 AI 시대 변해가는 사회에 대한 우려 때문인가.
“나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막을 것 같냐고 물어보면 막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그정도로 두려워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같이 두려워하면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 때도 집합금지 조치로 5명 이상 모이지 못하게 했고, 전 인류가 핵전쟁이 발생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핵전쟁 위기도 이겨냈다. 다같이 두려워하면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사회를 살지 않는 건 '1984'라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4'의 디스토피아는 다가 수 있는 미래였지만, '1984'를 읽은 사람들이 정치권력과 감시 기술이 결합하면 끔찍한 상태가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계속 견제하고 비판했다. 좋은 스토리텔링이 미래를 바꾼 사례다.
문학은 고통을 전하기에 좋고, 좋은 문학 작품들은 다 고통스럽다. 좋은 미래를 그리는 서사는 시시한 작품으로 끝나거나 최악의 경우엔 유토피아 서사 때문에 현실이 지옥이 된다. 지금 내가 만들고 싶은 종말 서사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AI 때문에 가치가 없어질 거라는 종말서사다. 이 종말서사를 무섭게 보여주고 막고 싶은 게 스토리텔러로서 나의 바람이다. SF의 장르적 쾌감엔 관심이 없다. 나는 현실에 관심이 있고 (SF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문학이라고 생각해서 쓰려하고 있다.”
-지금 AI 시대에 문학과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 어느 시대에나 글쓰기는 중요했다. 문명사회는 다 책으로 이뤄져있다고 생각한다. DDT라는 살충제를 통제한 건 결국 '침묵의 봄'이라는 한 권의 책이었고, 그 책의 감동은 '새들이 이제 노래하지 않는다'는 스토리에서 나왔다. DDT의 유해성분 관련 이야기도 책에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이제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구나'는 생각에 두려워졌고 막아야겠다 생각했고, 그런식으로 책이 세상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강명 작가는 9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AI와 스토리테크, 새로운 미디어의 도래'에 출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편집자 주)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AI와 스토리테크, 새로운 미디어의 도래' → www.mediafutu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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