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해석 개헌] ⑥ 일제시대 조선인의 국적은 일본인가

이범준 2024. 8. 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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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로 불리는 인사들을 역사 관련 기관 요직에 앉히고 있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는 새 독립기념관장에 재단법인 대한민국역사와미래 김형석 이사장을 임명했다. 그런데 김형석 관장이 대한민국헌법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거듭해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철회를 하지 않으면서, 이들의 생각이 대통령의 견해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발언이 헌법적으로 어떠한 의미인지 살펴본다. 

독립기념관장 후보 면접에서 ‘일제시대 조선인 국적은 일본’이라고 발언

김형석 관장은 독립기념관장 후보 면접에서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에, 일본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논란이 되자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은 일제시대 우리 국민의 국적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 일제시대에 우리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었죠. 주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일본에, 그래서 우리가 그걸 되찾기 위해서 온 국민이 독립운동한 것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일본 신민이니 뭐니, 이상한 얘기를 하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고 그건 조작이고 날조입니다.
- MBC 라디오 <시선집중>, 2024년 8월 14일. 

독립운동가를 수사 관할에 묶어두려, 조선에 국적법 시행하지 않아

제국주의국가 일본이 일본국적을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국적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국일본은 조선에 국적법을 시행하지 않았다. 이유는 독립운동가들을 수사 관할 안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조선인이 한일강제병합 이전부터 연해주 등으로 이주했고, 이 가운데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그런데 일본 옛 국적법에는 1899년 제정 때부터 국적이탈 조항이 있었다. “자신의 지망에 따라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국적을 상실한다”라고 제20조에서 정했다(国籍法、明治32年 3月16日 法律第66号). 

이에 따라 이 옛 국적법을 제국일본은 조선에 시행하지 않았다.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이중국적 상태로 묶어 수사 관할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인섭, 재일교포의 법적지위,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국적법 시행하지 않으면서도, 조선인을 일본국민으로 규정하려 시도

제국일본은 조선에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도 조선인을 통제하기 위해 일본국민으로 규정해야 했다. 조선인의 일본국적은 국적법이 아닌 관습‧조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인의 일본국적은 관습‧조리에 따른 것이라는 이론은 도쿄제국대학 헌법학자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가 내놓았다. 미노베는 1920년대까지도 국적법을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美濃部達吉、憲法撮要、有斐閣、1923). 

하지만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자 1930년대 들어 견해를 바꿨다. 조선인의 국적에 관한 성문이 없기에 관습과 조리로 일본국적이 생겼다고 했다 (美濃部達吉、憲法撮要 改訂 第5版、有斐閣、1932). 이는 일본 정부의 인식이기도 했다.

조선인을 헌법상 권리와 의무가 있는 일본국민으로도 규정하지 않아 

제국일본이 모호하게 조선인을 일본국민으로 규정하거나 규정하지 않은 이유는, 헌법상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즉 제국헌법이 정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일강제병합 두 달 전인 1910년 6월 일본정부는 각의결정(併合後の対韓施政につき閣議決定 明治3年 6月3日)에서 조선에는 헌법을 당분간 시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총리대신은 가쓰라 다로(桂太郎)였다. 

이 각의 결정에는 제국헌법 해석이 달려있다. 내용은 대일본제국헌법이 조선에 적용이 되어야 하지만 한동안은 필요한 것만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신영토에 제국헌법 각 조장(条章)을 시행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하여, 헌법의 범위에서 제외법규를 제정한다.”라고 했다. 

가쓰라 다로는 한일강제병합 직후인 1911년 3월에는 조선에 대일본제국헌법이 시행된다고 제국의회 귀족원에 출석해 밝혔다. 하지만 이는 언젠가, 일부조항을 시행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했다. 가쓰라 내각은 조선에 헌법을 시행할 의지가 없었다. 이유는 조선에 제국헌법을 시행하면 헌법이 정한 신민의 권리와 의무를 조선에 사는 조선인에게도 보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국헌법이 시행되지 않았기에 제국의회가 만든 법률도 시행되지 않아

헌법은 전체가 유기적인 문서이다. 따라서 일부 조항만 적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제국일본은 그렇게 주장했다. 

조선에 적용하지 않은 제국헌법 조항 가운데, 제5조 “천황은 제국의회의 협찬으로써 입법권을 행사한다”가 있다. 이 조항을 조선에 시행하면 선거법을 비롯해 제국의회가 만든 모든 법률이 조선에 시행되어야 한다. 

이에 제국일본은 제국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닌 조선총독이 만든 제령(制令)으로 식민지 조선을 통치했다. 제령이 규정한 대표적인 내용이 제국헌법 제2장 ‘신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제국헌법 위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듯 일제시기 조선의 법률제정권은 조선총독에게 장악돼 있었다. 그래서 “조선총독의 이러한 강력한 권한은, 그것이 일제의 제국의회나 중앙정부의 간섭의 배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지배의 효율성=자의성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김창록, 제령에 관한 연구, 법사학연구 제26호, 2002)”라고 평가받는다. 

헌법상 일본인은 아니지만 국제법상 일본인이라는 초(超) 이론적 합리화

조선인에게 국적법을 적용하지도 않고, 조선에 제국헌법을 적용하지도 않으면, 조선은 제국일본의 식민지, 제국일본의 영토가 맞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모순을 합리화하려 국제법상 일본 영토 안에 헌법상의 외국이 존재한다고도 했다(石川健治、憲法のなかの「外国」、日本法の中の外国法-基本法の比較法的考察(早稲田大学比較法研究所 編)、2014). 이는 조선인은 헌법상 일본인은 아니지만 국제법상 일본인이라는 설명이 된다. 

조선인이 일본국민이었기에 손기정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선수로 출전하지 않았느냐는 일부 뉴라이트의 주장은,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조선인이 일본국민일 뿐, 신민이라고 한 적은 없다는 주장의 뒷면

김형석 관장은 자신은 조선인이 일본국민이라고 했을 뿐, 신민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는 그가 제국일본의 이중적 법체계를 모른 체 하거나, 애초 이해가 깊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민과 신민의 관계에 관해 미노베 다쓰키치는 1920년대 ‘군주+황족+신민=국민’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신민은 국민이지만, 국민이 반드시 신민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이렇다. “국민이라는 말은 네이션(Nation)이나 폴크(Volk)와 비슷하며,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이를 총괄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군주를 포함한다. 이와 달리 신민은 군주를 상대로 쓰인다. 군주를 포함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성문법상으로는 황족도 포함하지 않는다.(美濃部達吉、憲法撮要、有斐閣、1923).” 

김형석 관장의 말대로 일본국민이면서 일본신민이 아닌 존재는 군주와 황족뿐이다. 조선인 가운데 군주 즉 천황은 없었고, 왕공족 같은 황족만 극소수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조선인에게는 국민과 신민은 사실상 같았다. 

만약 김형석 관장이 일본국민과 일본신민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제국일본의 견해와 이어지게 된다. 일본국민이지만 일본신민은 아니라는 주장은, 조선인이 국제법으로는 일본인이지만 헌법적으로는 아니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국민이라면 강제동원도 합법적이냐는 반문의 한계

김형석 관장을 인터뷰한 MBC 진행자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며 이렇게 질문했다. 

국적이 일본이었다라는 그런 말씀에 따르면 표현을 이렇게 바꿔서 그럼 당시 일제의 법령의 지배하에 있었다라고 해석해도 되는 거죠? … 법령의 지배 하에 있어서 어떤 일을 겪었냐면 징용되어 버렸습니다. … 국민징용령이나 노무조정령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강제로 끌고 가서 징집도 하고 노동도 시키고 위안부로 동원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건 일제의 법령에 의한 통치였다, 이렇게 해석해야 되는 걸까요?
- MBC 라디오 <시선집중>, 2024년 8월 14일.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여러 잘못된 전제 위에 있다. 우선 조선인이 일제 법령의 강압적 지배를 받는 것과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인지는 무관하다. 당장 지금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외국인도 대한민국 법령의 지배 아래에 있다. 조선인이 제국일본 법령의 지배를 받은 것은, 조선인이 사는 강토가 제국일본에 강탈됐기 때문이다. 

조선인이 제국일본의 강압적 지배를 받은 것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라거나 강제동원이 법령에 근거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강제동원을 비롯한 제국일본의 부당한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형식적으로 일본국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만주로 연해주로 이주하여 불법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MBC 진행자는 조선인이 일본국적이 아니라면 국민징용령 등이 불법이지만, 일본국민이라면 정당한 통치가 되는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법령에 의한 통치라면 모든 게 정당화한다는, 악법도 법이라는 실증주의적 해석까지 나아갈 수 있다. 

주권을 빼앗겨 일본국민이 됐고, 그래서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라는 주장

이른바 건국절을 주장하거나, 적어도 1919년 대한민국 건국 대신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하는 발언이 “주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일본에, 그래서 우리가 그걸 되찾기 위해서 온 국민이 독립운동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조선인이 일본국적인지는 제국일본의 식민지배 정당성 논쟁의 본질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국적을 기반으로 국가에 합법성을 부여해, 일제시대를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같은 나쁜 정부 수준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제국일본에 협력한 것이 아름다운 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헌법적이거나 반국가적인 일은 아니라는 내심이 있다. 이를 부정하지 못하면 일제에 부역한 과거가 반헌법적‧반국가적인 일임을 자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헌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1919년 독립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진 임시정부헌법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을, 레토릭에 불과하다며 부정하는 것이다. 

1919년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헌법제정 권력 행사이자 주권의 실현

대한민국 헌법학계 상식은 1919년 3‧1운동을 한반도의 주권이 조선인에게 있음을 확인한 일이라고 본다. 즉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구성원의 정치적 의사표시이자 헌법제정 권력 행사라고 본다. 달리 말해, 3‧1운동 이후 조선인들은 제국일본 정부가 행사하던 한반도의 주권을 부정하고 공동체로 되찾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귀속시킨 것이다. 주권이란 공동체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는 최종적인 지위와 권위로서 헌법 및 국가권력의 정당화를 위한 개념(전종익, 공동체로서의 국가와 정부, 서울대학교 법학 제55권 제4호, 2014)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 국무위원이던 정종섭 전 서울대 교수도, 일제시기 우리에게 정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종섭 교수는 “일본제국주의가 우리의 강토를 강탈했을 때 우리는 무력에 의한 압제 속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공동체의 주민과 자연의 강토는 여전히 존재한 상태에서 … 우리 조상들은 이 나라가 국가임을 분명하고도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정부의 기능을 작동시켰다(정종섭, 한국헌법사문류, 박영사, 2002)”라고 했다.

그래서 1948년 대한민국헌법은 전문에서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밝혔다. 이러한 헌법적 사실(史實)을 수사적 표현이라고 폄훼하려는 시도는, 일제의 35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친일 과오를 미화하려는,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도전이다. 그리고 이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 도전 세력의 배후에 국가와 헌법을 수호해야할 대통령이 있다.

뉴스타파 이범준 seirot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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