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세 명과 거실에서 아이 갈 병원 전화 돌려”··· 빨간 불 켜진 응급실

이혜인 기자 2024. 8. 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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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6개월을 넘게 지속되면서 응급실 과부하가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이다. 정부가 의료공백에 따른 응급실 진료 관련 브리핑을 진행한 20일 서울대학교병원 내 서울권역 응급의료센터에서 한 의료인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태형 기자

서울에서 29개월 자녀를 키우는 김수영씨(39·가명)는 지난 주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몇 시간 동안 고열이 계속됐고 아이가 “배아파”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김씨는 119를 눌렀다. “요즘 응급실에 가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119를 통해 응급처치 같은 대처법을 구할 생각”이었다.

전화를 받은 119 종합상황실 직원이 당황하며 “구급상황관리센터(구상센터) 통화량이 너무 많아서 연결이 아예 안 된다”고 했다. 119에 연락하면 상황실에서 시·도마다 있는 구상센터로 다시 연결해준다. 구상센터에서 대처법이나 진료 가능한 주변 병·의원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이 과정 자체가 막힌 것이다. 전화가 끊기는 일이 반복되자, 우선 김씨의 집으로 구급차와 구급대원을 보내주기로 했다.

김씨의 집에 도착한 구급대원 세 명이 김씨 집 거실에 앉아서 인근 병원에 다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인근의 2·3차 병원은 다 “소아 응급 진료가 불가하다”며 거부했다. 다행스럽게도 집에서 10km 가량 떨어진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승인이 떨어졌다. 김씨는 “병원에 도착해서 대기하는 중에 경증·비응급은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혹시 진료를 못 보고 돌려보내질까봐 무서웠다”고 말했다.

의료공백 6개월··· 환자 늘고, 의료진 줄면서 응급실 정상진료 불가

의대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의·정갈등 사태가 6개월째 지속되면서 응급실에 걸린 과부하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음이 잇따른다. 경증 환자들이 다시 응급실을 찾으면서 환자 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장기간 초과근무를 하며 버티던 의료진이 대형병원들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응급 진료는 축소되고 있다. 의료진들은 이대로면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추석연휴에 응급실 위기가 폭발할까 우려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도 사실상 빈손이 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가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기에 앞서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병원 상황을 제공받는 ‘응급실 종합상황판’ 사이트에서 권역 및 지역의료센터 응급실 상황들을 조회했다. 병원들은 평일에조차 응급진료가 불가한 상황들을 다급하게 알리고 있었다.

경북대학교병원은 평일인 이달 19~20일 오전에 성형외과, 비뇨의학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안과 등 10여개 진료과가 ‘의료진 부재로 응급 진료 불가’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 응급실은 ‘신경외과 의료진 부족으로 뇌출혈수술, 뇌경색의 재관류중재술 진료불가능’(20일), 양산부산대병원은 ‘[정형외과] 소아 포함 모든 파트 진료 및 수술 불가능’(16일), 충북대 병원 응급실은 ‘해당과 인력 부족으로 장중첩/폐색(영유아), 소아 수술 불가’(14일), 안동병원은 ‘응급실 내 격리병상 부족으로 폐렴, 발열, 호흡기 증상 환자는 이송 전 문의 바랍니다’ 등의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20일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종합 상황판’의 경북대학교 응급실 메시지를 보면, 19~20일에 이비인후과 등 10여개 과가 의료진 부재 등으로 응급진료가 불가하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홈페이지 캡처

구상센터 통화가 먹통이 될 정도의 상황은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늘어나고, 응급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은 늘어나면서 전원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말 전공의 이탈 후 한시적으로 줄어들었던 응급실 환자 수는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다시 회복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평일(5~9일)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1만9347명으로, 의료공백 사태 직전인 2월 첫째 주 평일(1만7892명)을 뛰어넘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응급실 코로나19 내원 환자수는 지난 6월 2277명에서 7월 1만3495명으로 한 달 만에 6배가량 급증했다. 질병관리청이 8월 한 달 코로나 환자가 주당 35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작년 여름 유행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라 전망하는 것을 감안하면, 8월 코로나19로 인한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진과 병상은 부족하다. 지난 14일 충북대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일부가 휴직과 병가 등으로 빠지면서 하루 동안 일시적으로 응급진료를 중단하는 등 지역 거점 병원들의 응급실 운행이 흔들리는 사례가 잇따랐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인력 부족 등으로 응급실 병상을 축소해 운영하는 기관은 올해 2월21일 6곳에서 7월31일 기준 24곳으로 늘어났다. 5월부터 이미 병상을 축소한 곳이 20곳이 넘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기 전에는 밤 시간대 당직을 서면서 응급 환자 진료를 같이 봐줬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병원들이 진료 불가라는 메시지를 띄워두는 것”이라며 “교수들이 집에서 ‘온콜’(대기) 상태로 있다가 급한 수술이 있으면 뛰어나오기도 하지만, 교수 1~2명만 남은 과에서는 온콜로 계속 대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 수가 증가하면서 응급실 전원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다. 20일 서울대학교병원 내 서울권역 응급의료센터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정부 “일부에서만 벌어지는 일”, 현장 “추석 연휴 응급실 위기 심각할 것”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응급실 문제에 대해서 일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며, 조만간 정상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날 응급실 진료 관련 브리핑에서 “최근 의료계 집단행동의 영향으로 일부 응급의료기관에서 일시적으로 진료 제한이 발생했다”며 “다만 이는 전체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5곳(1.2%)에 해당하는 것으로, 응급실이 완전히 마비된 게 아니라 일부 기능이 축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시적으로 운영이 제한된 응급실도 신속히 정상 진료를 개시했거나, 향후 정상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100% 인상, 광역상황실 추가 등 대책을 통해 진료여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408개 응급의료기관이 아니라 일반 응급실을 운영하거나 야간에만 일정 시간 진료하는 기관들도 응급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 의료진들은 이미 2차 병원까지도 응급실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고 전한다. 2차 병원에서 근무 중인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2차 병원들은 이미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최 전문의는 “평일인 어제만 해도 중환자실 정규 병상 수보다 4베드(병상) 초과 수용 상태였다”며 “부울경(부산·울산·경남)에서조차 환자 수용할 수 있냐고 연락이 계속 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전문의는 “일반 병원이 다 쉬어서 응급실만으로 버텨야되는 추석 연휴 때는 환자들이 길에서 떠돌아다니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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