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끼리 피아노 연주 배틀까지…기계·예술 경계 허물어진다

문세영 기자 2024. 8. 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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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의 AI 피아노와 유수진 바이올리니스트, 김선주 첼리스트가 협주를 하고 있다. 문세영 기자.

(배틀 전) ”이쪽은 모두들 알고 있는 스타, 최초의 AI 작곡가 ‘이봄’이야. 작곡 이론을 공부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노래를 만들어. 이봄에게 도전장을 내민 신참은 화려한 외관만큼 실력도 갖췄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둘의 피아노 대결을 시작할게.“

(배틀 후) ”멜로디는 분명히 똑같아. 똑같은데 이쪽은 느낌이 좀 더 쾌활하고 발랄하고 기교가 많이 들어간 느낌이야.“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피아노 배틀 장면을 두 대의 인공지능(AI) 피아노가 재현했다. 20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오룡관에서는 AI 작곡가 ‘이봄(EvoM)’을 탑재한 그랜드피아노 두 대가 연주 배틀을 펼쳤다.

영화 장면을 재현하는 역할을 맡은 GIST 재학생은 두 피아노 연주에 대해 동일한 멜로디가 서로 다른 무드를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AI의 피아노 연주 배틀을 구현한 건 이번이 세계 최초다. 

사람의 고유 영역으로 생각했던 예술 영역에서 AI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AI는 사람처럼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한다. 기술과 예술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며 인간의 역할을 함께 하거나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연주 배틀까지 한다. 즉석 배틀은 아니며 장면을 구현한 것이긴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곡들이 아닌 이봄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배틀 장면을 재현했다. 

국내 최초로 AI 작곡가(이봄)를 개발한 안창욱 GIST 인공지능연구소 소장은 배틀에 사용된 음악들에 대해 ”영화에 나온 곡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곡들“이라며 ”이봄이 작곡을 했고 강약 세기 조정 수준에서 인간의 편곡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빅데이터가 필요한 기존 생성형 AI와는 다른 기술이 적용됐다. 안 소장이 연구 중인 ‘합성형 AI’ 기술이 활용됐다. 안 소장은 ”기존 생성형 AI처럼 데이터만 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데이터 사용은 최소화하고 이론적인 지식들을 함께 믹스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봄은 음악 콘텐츠만 대량으로 학습하는 게 아니라 음악 이론을 기초로 음을 익히고 코드를 학습한 뒤 작곡과 연주를 한다. 전문가 지식과 노하우를 접목했기 때문에 일반 생성형 AI처럼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다. 데이터 사용을 최소화해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노트북으로도 구동 가능하다. 

사람 없이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AI 피아노는 마술을 넘은 ‘마법’이라고도 안 소장은 설명했다. 그는 ”문자를 만들고 도시 문명을 이루고 수학과 과학 지식을 발견한 인류는 21세기 들어 로봇자동화를 통한 스마트 제조, 초고속 무선 인터넷 통신 등 최첨단 기술을 개발했다“며 ”더 나아가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 두뇌를 구현하는 AI 기술이 등장해 마술이 아닌 마법을 실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창욱 GIST 인공지능연구소 소장이 영화 속 피아노 연주 배틀 장면을 재현하는 AI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문세영 기자.

AI가 예술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란 두려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GIST 인공지능연구소는 AI가 사람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며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이날 AI 피아노와 인간의 협업 무대를 통해 공존의 예시를 재현한 무대도 마련했다. 두 대의 AI 피아노와 유수진 바이올리니스트, 김선주 첼리스트가 협주를 통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인간과 AI의 공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AI는 사람 얼굴을 인식하고 대화도 하면서 기분 상태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줄 수 있다. 도서관이나 관공서, 호텔 로비 등 공간 목적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연인이나 친구 등에게 선물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 AI와의 공존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만큼 건강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임기철 GIST 총장은 “이틀 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가짜 영상이 X(구 트위터)를 통해 생산되면서 대선에서 딥페이크가 판을 칠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며 “AI 문명 대전환의 원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AI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 확산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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