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살 되자 해고된 장애인 상담가…“노인 요양 강제전환은 고려장”
뇌병변 장애인 최윤정(65)씨는 2020년부터 장애인 동료상담가로 일해 왔다. 매년 계약을 갱신했고, 올해 1월1일에도 근로계약서를 썼다. 최씨는 올해 3월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최씨가 만 65살이 된 지난 2월 노인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인정(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자격 요건)’받은 최씨가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건 모순이라는 논리로, 노인으로 분류되며 장애인 지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씨는 “행정복지센터 담당자가 ‘올해 만 65살이 되니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해야 한다’고 계속 안내하기에 판정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노인이 되며 최씨가 잃어버린 지원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매월 420시간씩 받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도 300시간으로 크게 줄었다. 일자리 참여와 같은 사회 활동을 많이 할수록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는데, 일을 못 하게 되니 앞으로 활동지원 시간을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만 65살 생일이 지났다고 하루아침에 해고돼 실직자가 됐습니다. 64살일 때는 멀쩡하다가 1년 사이에 갑자기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최씨가 흐느꼈다.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34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 최씨같은 고령 장애인 30여명이 모여 마이크를 들었다. 이들은 “정부가 만 65살이 넘으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대신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도록 사실상 강제로 전환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현행법상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는 65살 미만 장애인 또는 해당 제도의 수급자였다가 65살 이상이 된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다. 65살 이후부터는 장애인, 비장애인에 상관없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최씨처럼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해온 이들에게도 정부가 행정 편의를 이유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노인요양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로 월 최대 480시간을 지원한다. 그러나 노인요양서비스는 고령층의 요양을 목적으로 하는 ‘재가 서비스’ 중심으로, 월 최대 116시간에 일부 보전급여(추가 활동지원)만 지원한다. 서비스의 유형과 지원 시간 모두 차이가 있는 셈이다.
박명애(69) 전국장애노인연대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지금과 같은 강제 전환은) 현대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저도 고려장 당하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발버둥을 쳤다. 노인장기요양으로 떨어진다면 이 세상을 버리려고 생각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김영희(63)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도 “저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두려움이 매일 엄습한다. 나이가 들면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은 오늘을 사는 모든 장애인의 문제”라고 짚었다.
참가자들은 지금처럼 강제로 복지 서비스를 전환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며, 두 서비스 사이에서 장애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책실장은 “현행 제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고, 65살이 넘은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을 또 차별하고, 활동 지원 서비스를 몰라 노인장기요양을 먼저 수급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며 “이 모든 일은 예산과 행정 편의의 논리를 앞세운 정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해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최씨와 연대하는 장애인 단체들도 지난달 29일 서울행정법원에 장애 노인의 복지 서비스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는 행정소송(사회보장급여변경처분 취소소송)과 노인요양서비스를 받을 경우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현 지침을 삭제하도록 하는 소송(차별 구제청구의 소)을 제기한 상태다.
소송대리인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정부가 편한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하며 시혜적 태도에 머물러 있다”며 “고령화 시대에 장애 노인이 장애인으로서도, 노인으로서도 소외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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