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엔 고통받은 동물이 없기를

한겨레21 2024. 8. 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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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밥상]‘개 식용 금지’ 관심에서 시작한 다짐과 실천,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지길
일러스트레이션 초식마녀

늘어가는 주름처럼 가야 할 장례식이 늘어난다. 결혼 소식보다 부고를 더 자주 듣는 시기가 왔다. 생애 주기가 이렇게 짧았던가. 아쉽게도 이번 생에 번식은 실패했지만 익어갈 열매가 없어도 나이테는 늘어나는 법이다. 차가운 편육과 홍어무침, 떡과 과일이 밥과 함께 빠르게 차려진다. 하얀 쌀밥 옆에 빨간 소기름이 뜬 육개장이 한 그릇 놓인다. 늙지 못한 고인을 보내는 길, 남겨진 사람들이 모여 육개장을 먹는다. 나는 친구에게 육개장을 떠넘기고 피 묻지 않은 반찬을 향해 젓가락을 뻗는다.

육개장은 개장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개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넣기 시작하며 앞에 ‘육’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이제는 불법이 된 ‘개고기’지만(2024년 8월7일은 개 식용 종식법 시행 첫날이었다. 수많은 논란과 갈등을 거쳐 식용 목적으로 개를 키우거나 죽이거나 가공하는 일은 불법이 됐다. 단속은 3년의 유예기간이 지난 2027년 2월부터 시행된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개를 먹어왔고 여전히 먹고 있다.

나는 “다른 고기는 먹으면서 왜 개고기만 안 돼?”라는 질문에 이끌려 비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기견을 돌보는 경험을 하며 개를 좁은 철창에 가둬두고 잔인하게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지만, 먹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비참하게 살아가고 죽어가는 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먹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소, 돼지, 닭은 다 먹으면서 개고기‘만’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스스로 이해될 만한 논리적인 이유를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개뿐만 아니라 돼지도 영리하고, 닭도 고통을 느낀다. 고통받지 않을 권리는 ‘개’만의 특권이 돼선 안 된다.

당시 개 식용 문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영역이 있었으나 돼지, 소, 닭처럼 가축으로 분류된 동물을 고통스럽게 키우거나 죽이는 일은 완전히 합법이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대충 모르는 척 고기를 먹으면서 동물 학대에 공모하거나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학대와 도살의 가능성을 줄이거나 둘 중 하나다. 개로부터 출발한 육식에 대한 불편함이 누적되다가 결국 모든 동물을 먹지 않는 채식을 지향하게 됐다.

때로는 오해받고 외로워지기도 하지만, 오해받지 않고 외롭지 않은 삶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동물의 숙명이지만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최대한 덜 해치는 식사를 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과 행동이 끼니마다 누적되는 일이다. 끼니마다 단단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100% 비건식으로 먹겠다고 장례식에서까지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차마 육개장은 먹지 못했지만, 높은 확률로 젓갈이 쓰였을 김치도 집어먹고, 동물성 조미료가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버섯무침도 먹고, 내 입장에선 멸치가 묻어 있는 꽈리고추무침도 열심히 집어먹었다. 이런 날은 ‘나’보다 ‘위로’가 더 중요하니까. 조금 어이없는 부분은 이 와중에 제철인 꽈리고추가 맛있어서 요즘 반찬으로 자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잘 씻은 꽈리고추에 밀가루를 묻힌 뒤 밀폐용기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쉽게 쪄진다. 거기에 매콤한 양념을 조물조물 무쳐주면 간단하게 완성된다. 산다는 게 참, 때때로 바보처럼 굴 때 더 잘 흘러가곤 한다.

나의 장례식에는 죽은 동물이 없기를. 나와의 이별을 위로하기 위해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은 존재의 살점이 쓰이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로 유언을 남긴다. 비싼 수의나 관도 다 필요 없다. 내 바람은 이것 하나다.

슬픔을 싣고 가는 버스 위에서 새벽을 바라본다. 순환하는 탄생과 소멸의 고리에서 내가 쥐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덧없는지 확인한다. 안 올지도 모르는 노후를 준비하느라 반드시 맞이할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다시 깨지 않는 아침에도 동이 튼다. 동쪽의 빛이 어둠을 치운다.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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