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탄소중립 시대 산업경쟁력 선점을 위한 경쟁

2024. 8. 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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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스1) = 탄소중립으로 인해 세계 경제 질서와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미국과 EU 등 주요국들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선도적으로 산업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청정에너지 기반의 경제체제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고 자국 중심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함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보호무역주의와 산업 정책의 부활로 해석되고 있다.

먼저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재정비해 2022년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과시켰다. IRA는 기후변화 대응과 청정에너지 산업을 선도하고 미국 내 관련 산업 생산을 확대하여 미국 내 일자리를 확보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총 투자 예산의 84.4%가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이 법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청정 발전 설비 투자와 생산에 대한 세액 공제, 국내 제조 전환 보조금 등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지원을 제시하고, 배터리와 전기차 등 산업별 미국 내 생산 비율을 세분화해 규정함으로써 신산업 분야에서의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강력한 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IRA 도입 이후 미국 내 총 1102억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신규 창출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적극적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EU는 2023년 2월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EU의 2050년 기후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친환경 산업 육성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IRA와 같은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보다는 규제 환경을 개선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 방안을 주로 담고 있다. 이후 EU는 이 계획을 기반으로 2023년 3월 '탄소중립산업법(NZIA, Net Zero Industry Act)'과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 Act)' 초안을 발표해 그린딜 산업계획 이행을 위한 세부 대책들을 제시하였다. 탄소중립산업법은 EU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탄소중립 기술의 유럽 내 제조역량 향상 및 공급망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법으로, 삼자 협상을 거쳐 2024년 5월 최종 승인됐다. 핵심원자재법은 핵심원자재 관련 공급 안정성을 제고하고 역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법으로, 2024년 3월 최종 승인됐다. 이중 친환경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탄소중립산업법'에선 EU의 기후·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19개 탄소중립 기술 목록을 제시하고, 2030년까지 해당 기술의 EU 역내 제조 역량 목표를 연간 수요의 40% 이상으로 제시했다. 당초 발표된 법안 초안에서는 태양광 및 태양열, 육상 및 해상풍력, 배터리 및 에너지저장, 히트펌프 및 지열, 수전해 및 연료전지, 지속가능 바이오가스 및 바이오메탄, CCS, 전력망 등 에너지신산업을 중심으로 한 8대 탄소중립 기술을 제시했으나, 3자 협상 과정에서 핵분열 에너지 기술, 기타 원자력 기술, 지속가능 대체연료 기술, 에너지효율기술, 탄소감축을 위한 혁신적 산업 기술, CO2 수송 및 활용 기술 등이 추가되며 19대 기술로 범위가 확대됐다. EU는 이와 같이 탄소중립 기술의 범위를 폭넓게 정의함으로써 산업 전반의 탄소중립 전환을 촉진하고 핵심 산업의 제조업 기반을 확보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미국과 EU 산업전략의 공통점은 탄소중립 관련 신산업에서의 제조업 기반 확보를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를 주목표로 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세계 제조업 1위 국가로 부상하고, 2021년에는 세계 제조업의 30%를 넘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주요국들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된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제조업의 27.7%까지 차지하며 세계 제조업 1위 국가를 유지해 온 미국은 중국의 부상으로 2위로 밀려났고, 2022년에는 그 비중 또한 16.3%로 감소했다. 세계 2위 제조업 국가였던 일본은 1995년에 세계 제조업의 22.9%를 차지했지만 2022년에는 5.3%까지 감소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3~6위권을 차지하던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내 국가들은 독일을 제외하고는 2022년 9위권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현재 4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도 1995년 9.3%에서 2022년에 4.6%로 그 비중이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중국의 부상으로 자국 내 제조업 기반에 큰 타격을 입은 선진국들은 탄소중립으로 인한 산업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제조업 역량과 자국의 산업경쟁력 회복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현재 3~4위 제조업 국가인 일본과 독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가 주요 의제로 부상하면서 탈탄소,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경제성장의 3가지 목표 실현을 위해 녹색전환(GX, Green Transformation)를 강조했다. 이후 GX 실행회의를 통해 GX 실현을 위한 기본방침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2023년 5월 GX 추진법과 GX 탈탄소전원법을 제정했다. 2023년 7월에는 이 두 가지 법에 근거한 녹색전환 총괄 정책 '탈탄소성장형 경제구조 이행 추진전략(GX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GX 추진법과 GX 추진전략에 담긴 일본의 주요 산업 전략은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GX 경제이행채 발행과 안정적 에너지 공급확보를 대전제로 한 산업 부문 탄소중립 대전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EU '탄소중립산업법'의 적용을 받는 독일은 별도의 법률 제정 없이 2023년 10월 전환기 산업전략(Industriepolitik in der Zeitenwende)을 수립했다. 독일 산업전략의 주요 내용은 에너지공급 안보와 에너지 가격경쟁력 확보, 인프라 현대화 및 독일의 구조적 갱신 등이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국제 지정학적 변화를 통해 독일 산업이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서, 독일은 에너지 공급 안보와 경제 안보를 최우선으로 두고 이러한 전략을 수립하였다. 일본과 독일, 기존 제조업 강국들의 산업전략의 공통점은 산업 부문에 필수적인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1순위로 두고, 기존 산업에서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와 구조 전환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제조업에서 2.6%의 비중을 차지하는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국가이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기 전 세계 제조업 내 비중 3%대에 진입해 2017년 3.4%, 세계 5위까지 상승하다가 이후 감소 추세로 전환되어 2022년 2.6%로 감소했다. 우리는 상대적 후발주자로서 중국의 제조업 비중 확대로 인한 영향은 미국이나 일본, 독일만큼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무역의존도가 독일 다음으로 가장 높은 84.5%(2022년 기준, 수출 40.9%, 수입 43.7%)이며, 수출의 99% 이상이 제조업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독일은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이 EU 내에서 이뤄지지만, 한국의 3대 수출국은 중국, 미국, 베트남이며 EU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합산하면 EU 대상 수출액은 베트남보다 많아진다. 또한, 국가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8.0%로 28.2%인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다. 결국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제조업에 기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주요 수출 대상국에 해당하는 주요국들의 움직임을 고려할 때,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기존 제조업의 산업경쟁력을 지속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산업 부문 탄소중립 전환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적인 전략이 부재하며, 에너지 공급 안보도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는 에너지의 93%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며, 산업에서 사용하는 열에너지의 탈탄소화 방안도 부재한 상황이다. 탄소중립 시대 산업경쟁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 국가적 대응이 늦어지면, 산업경쟁력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 국가 경제구조의 특성과 국제적 흐름을 고려할 때 산업, 에너지, 통상을 연계한 산업 부문의 종합적인 탄소중립 전환 전략을 수립하고,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 전략 수립 및 이행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등 전략 추진 체계를 제대로 갖춰야 할 것이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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