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 결제·부도율 상승… 티메프 미지급만큼 '위험한 가시들'
폐지 약속했던 어음의 현재 2편
티메프 사태, ‘긴 결제주기’ 도마
‘어음’ 역시 현금화에 긴 시간 걸려
종이어음 폐지 공약 지켜지지 않고
‘손톱 밑 가시’인 어음의 덫 여전해
어음부도율 역시 심상치 않게 뛰어
좋지 않은 경제 상황 보여주는 증거
티메프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자 '긴 결제주기'가 도마에 올랐다. 그러자 현금화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어음은 괜찮을까'란 의문도 커지고 있다. 어음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전 정부가 공언했던 '2023년까지 어음 폐지' 플랜은 지켜졌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들어 어음결제비율과 어음부도율은 동시에 상승했다.
티메프(티몬ㆍ위메프) 사태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중엔 소비자도 있지만, 셀러(판매자ㆍseller)도 적지 않다. 티메프란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팔고서도 돈을 못 받은 이들이 숱하단 거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제때 받지 못해 경영 위기에 빠지는 건 사실 중소업체 사이에선 숙명과 같은 병폐다. 과거 '어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어음은 발행인이 수령인에게 '돈을 특정 날짜에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발행하는 신용증서다. 어음은 거래 때마다 손쉽게 대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리스크가 훨씬 크다.
특히 어음을 받는 기업 입장에선 제때 현금화할 수 없는 게 문제다. 현금 유동성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은 자칫 경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어음을 발행한 구매기업이 도산하면 어음을 수취한 판매기업도 연쇄 도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어음의 공포를 1997년 외환위기 때 뼈저리게 경험했다. 어음을 받았던 수많은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와 정치권에선 어음을 없애려는 정책적 시도를 거듭했다.
1998년 출범한 국민의정부는 '어음제도를 폐하자'는 논의에 불을 붙였다. 당시 집권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가 '창업한 지 1년 미만인 기업엔 어음을 발행할 수 없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어음 폐지론을 밀어붙였다.
어음발행 총액한도제도의 도입도 시사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 땐 야당인 민주당이 '어음 만기를 60일 이내로 정하는' 어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후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는 어음을 '손톱 밑 가시'로 규정하고 규제를 꾀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어음폐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어음 폐지가 대선공약 중 하나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2년 후 종이어음 단계적 폐지'란 구체적인 플랜까지 제시했다. 종이어음 대신 좀 더 안전한 전자어음으로 대체해 위험을 뿌리 뽑겠단 전략이었는데,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종이어음 발행량이 줄어들긴 했기 때문이다. 금융결제원 어음정보센터에 따르면, 2013년 157만4138장이었던 어음 교환량은 2023년 17만6231장으로, 10년 사이 88.8% 급감했다.
그렇다면 우리 중소기업들은 '어음의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년 하도급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ㆍ용역ㆍ건설업에 속한 원청업체가 하도급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한 비율은 77.3%로, 전년(86.4%)보다 9.1%포인트 악화했다.
비현금 결제비율 22.7% 중 11.8%는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 어음대체결제수단을 활용했고, 어음으로 지급한 비율은 9.7%였다. 비중이 높은 건 아니지만, 어음 지급 비율은 전년(7.2%)보다 2.5%포인트 상승했다. 5년 전인 2018년 9.5%와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기간 어음 교환 장수가 64.4%(2018년 8158만8000장→2023년 2903만2000장)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에 어음 결제가 집중됐다는 의미다. '대기업→1차 협력사→2차 협력사→3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아랫단으로 갈수록 어음 결제 비중이 커진다는 얘기다.
강인수 숙명여대(경제학) 교수는 "대기업의 경우 어음이 많이 없어졌지만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은 어음을 발행해 지불을 늦추곤 한다"며 "어음은 오래 지속된 관행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뿌리 뽑히진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위험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심상치 않은 어음부도율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어음부도율은 0.23%로, 2022년의 0.10% 대비 두배 넘게 뛰었다. 이는 2001년 0.38% 이후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어음부도율이란 어음결제소에서 거래된 총교환금액 중에서 잔고부족으로 부도난 어음부도액의 비율을 말한다.
강인수 교수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부실 채무자들이 늘어나면 채권자는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자금운용상의 피해를 입는다"고 설명했다.
티메프 등 이커머스업체의 '긴 결제주기'처럼 어음 역시 현금화에 시간이 걸린다. 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위험에 빠지면, 어음을 받은 곳도 동시에 벼랑에 몰린다.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어음결제비율과 어음부도율이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런 심상치 않은 시그널을 잘 읽고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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