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팬데믹’ 알고 사랑하고 저항하라 [세상읽기]

한겨레 2024. 8. 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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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907기후정의행진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올해로 3년째인 기후정의행진은 오는 9월7일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린다. 노동자와 농민, 여성,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대규모 기후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코로나19 팬데믹이 떠오른다. 성폭력 피해자가 대면 상담도 못 받고 쉼터도 폐쇄되고 24시간 응급센터도 갈 수 없던 시간. 가정폭력 피해자, 시설에 기거하는 장애인은 지역사회에 나가지 못하고 처소에 고립됐다. 더 취약한 건강 약자, 세계적 위험을 막기 위해 고통과 불편마저 안던 나날. 코로나 팬데믹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했고 그것을 관리하거나 퇴출시키는 데 사회 대응체계가 작동했다. 그런데 기후 팬데믹은 어떤가?

올여름은 ‘기후 팬데믹’이다. 공기 온도와 길바닥 온도, 그 사이 습도에 치이고 지친다. 잠자는 시간도, 매 끼니 먹고 치우는 것도 힘들고, 기력 없고 우울하다. 에어컨이 있으면 다행인데, 그만큼 밖이 뜨거워지고 전기가 가동되는데 이게 답일 수 있어? 좌절감이 밀려온다. 기상이변이 산불, 해일, 참사로 닥쳐온 지 오래지만 올해 여름은 기후위기가 몸에 매겨지고 있다.

문제는 팬데믹과 달리 기후 팬데믹은 매일 뉴스에서 정기 브리핑이 없다는 점이다. 오늘 몇명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이송됐는지, 또는 사망했는지, 동물이 얼마나 사망했는지, 폭염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수위여서 작업중지가 되었는지,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는지, 사회 각 부문 온실가스 배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내가 힘든 만큼 전국 곳곳은 얼마나 힘들지, 북한,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기후와 피해는 어떤지 걱정된다. 농작물은 얼마나 녹아내리고 있을까, 기후 이주민, 기후 난민은 얼마나 생겨나고 있을까. 기후 팬데믹을 멈추려면 정부가, 시민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가슴 덜컹한 기후와 더위 뉴스를 보지만, 특별 정부 종합대책이나 정례 브리핑은 아직 없다. 이것은 위기가 아닌가?

4년 전 2020년 3월, 청소년 기후행동 19명의 청소년이 헌법 소원을 냈다. 청구인들은 국회와 정부 등 국가가 수립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턱없이 부족하여 시민들의 환경권,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배출량 대비 2030년까지 40% 줄이기로 한 탄소중립기본법은 그 목표대로라면 지구 온도를 1.5도 상승이 아니라 3도 상승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활동가와 시민들은 기후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각 나라에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4건의 한국 기후 헌법 소원은 병합되어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있다.

5년 전 2019년 시민들은 기후위기를 ‘비상’으로 호명하여 대규모 행진을 시작했다. 올해 9월7일 예정인 기후정의행진은 탄소 배출을 되레 가중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작태를 좀 더 자세하게 비판한다. 정부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 센터’를 위해 16GW 이상의 전력 수요 증가가 필요하다며 핵발전, 화력발전, 초고압 송전탑 건설계획을 추가하고 있는 것, 정부와 국회가 가덕도, 새만금을 비롯해 10여개의 신공항 사업을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907 기후정의행진’은 민간 자본이 농어촌 지역에 무분별하게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짓도록 방임할 것이 아니라 공공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라는 점 등 11개의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버려지는 옷과 상자로 만든 깃발과 손팻말을 든 시민들의 ‘기후저항’이 강남대로에서 열린다.

티브이(TV)를 틀어도 나오지 않는 정부 특별 브리핑의 빈자리 앞에서 나 역시 긴장하고 있다. 내 삶은 어떻게 전환될 것이며, 전환할 것인가? 녹색전환연구소에서 만든 ‘1.5도 라이프스타일’ 온라인 계산기를 해보니 충격적이다. 나의 연간 탄소발자국은 한국 평균과 동일한데, 2030 한국의 ‘1.5도 라이프스타일’ 목표 수치에 비교하니 무려 2.4배를 쓰고 있다. 이런 나에게 그동안 기후위기를 알고, 사랑하고, 저항하며 살아온 이들은 따뜻하고 친절하게 손 내민다. 10년 전부터 학교 텃밭과 텃논을 매개로 한 생태전환교육을 하는 ‘교육농 협동조합’ 활동가이면서 초등교사인 조진희님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기고 글에서 캐나다 밴쿠버 교육청의 지침을 소개했다. 환경 재난이 일상화되면 에코포비아(환경 혐오 현상)가 일어날 수 있는데 “지구를 구해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자연과 연결되고 지구를 사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진희 교사는 유기농 퇴비로 마을 주민, 청소년과 씨감자 수미, 자영, 홍영, 백작을 키운다. 오랫동안 ‘기꺼이 불편해지기’ 캠페인을 벌여온 여성들의 노력과 삶을 떠올린다. 알고 사랑하고 저항하기로 하면서 뜨거운 거리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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