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 가둬라”...미국 민주 전당대회는 한 사람을 향했다
트럼프를 이길 뻔한 사람, 트럼프를 이긴 사람, 트럼프에게 이겨야 하는 사람.
19일(현지시각) 시카고에서 개막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의 핵심 주제는 ‘트럼프를 패배시키자’였다. 첫날부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연단에 서면서 각각 2016·2020·2024년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결했거나 대결하고 있는 민주당 거물 3인의 핵심 메시지가 뚜렷하게 각인됐다.
셋 중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것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해리스 부통령이다.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떠나갈 듯한 큰 환호를 받은 그는 자신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행사에 참여한 셈인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역사적 리더십에 감사하다”, “우리는 언제나 고마워할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이상을 위해 싸우자. 우리가 싸울 때는 우리는 승리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고 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득표율은 앞섰으나 확보한 선거인단이 적어 석패한 클린턴 전 장관도 큰 환호 속에 연단에 섰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꿈을 해리스 부통령에게 넘겨준 그는 “우리는 미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34개 중범죄 유죄 평결을 받고 대통령 선거에 나선 최초의 인물”로서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조롱성 발언을 해 박수를 받았다. 클린턴 전 장관이 “우리가 트럼프를 도망 다니게 만들었다”고 말하자 청중은 “잡아 가두라”고 잇따라 외쳤다.
딸 애슐리의 소개로 연설 마지막 순서에 등장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지는 기립박수와 “고마워요, 조”라는 외침에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크 앞에 선 뒤로는 여전히 대통령 후보로서 유세를 하듯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제조업 일자리 80만개를 만들었다”는 등 자신의 치적을 나열하며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미국이여,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도 했다.
그는 숙적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름을 언급하며 비난을 쏟아부었다. 자신의 취임 2주 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이들이 일으킨 2021년 ‘1·6 의사당 난동’ 사태의 배후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이겼을 때만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며 질책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계속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정책을 방해했다며 그를 “패배자”,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우리는 2020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패배시켜) 민주주의를 구하려고 함께했다”며 해리스 부통령을 추켜세웠다. 그는 “내가 ‘우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카멀라와 나를 뜻한다”며 자신의 업적은 해리스 부통령의 업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해리스 부통령이 “역사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그의 당선을 위해 “최고의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자 연단에 올라 그를 얼싸안고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앞서 아내 질도 연단에 올라 남편의 대통령직 수행을 평가하고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을 비롯해 전당대회 첫날 연사들은 ‘범죄자 트럼프’를 강조하고, 그가 집권할 경우 여성들의 임신중지권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데 주력했다. 스타 정치인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우리는 트럼프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고 월스트리트 친구들의 ‘손바닥에 기름을 바르기’(부당한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면 나라를 1달러에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날 해리스 부통령의 상승세나 전현직 대통령들의 잇단 등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듯 전당대회장으로 쓰이는 실내경기장인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는 바닥에서부터 맨 위층까지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본행사가 열리는 저녁 시간대에는 입장에 2시간가량 소요되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20일에는 주요 경합주인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서 유세를 한다.
시카고/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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