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땅이 그리 만만한가”…이승만기념관이 들어설 수 없는 이유

노형석 기자 2024. 8. 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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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서울 용산 가족공원 풍경. 이곳 터에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추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노형석 기자

“용산이란 땅을 너무 쉽고 만만하게 보는 행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 용산 땅의 변천사를 탐구해온 건축사학계 한 연구자는 이런 촌평을 내놓았다.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동6가 168-6번지란 지번까지 밝히며 국립중앙박물관 옆 땅에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기념관을 짓겠다는 발표가 나온 뒤 기자와 한 통화에서다. 그는 “그동안 숱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여러 명분으로 새 건물을 세우겠다고 건드렸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났던 땅이다. 이번에도 과거 해프닝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발표 직후부터 재단 행보는 엇박자를 냈다. 지난해 11월부터 부지선정위를 구성해 10곳 이상 후보지를 고심하다 선정했다고 밝힌 땅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유지다. 문체부 담당자는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고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왜 여기를 지목해 발표했는지 경위를 모른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은 올해 문화재학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국가 기증 미술품 전시관이 들어설 서울 종로구 송현동을 올 초 오세훈 시장이 느닷없이 적지로 점찍어 발언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불교법란을 겪었던 인근 조계종과 태고종 불교교단의 반발을 부른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더니 이제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터를 새 적지로 정하고 올해 말 건축설계 공모에 들어가 2027년 완공 목표로 짓겠다는 구상까지 밝혔다.

재단이 지목한 땅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용산 기지의 한강변 연병장이었다. 해방 뒤 미군이 인수해 1950년대 말부터 골프장을 운영하다 1992년 반환했다. 이후 30만m² 넘는 용산가족공원이 들어섰다. 그러나 옛 조선총독부 철거 결정에 따라 정부가 국립중앙박물관을 공원 터로 이전시키면서 공원은 7만여m²로 쪼그라들었다.

2005~06년 노무현 정부 때 미군기지 평택 이전과 용산민족역사공원 조성의 정책 기틀을 잡은 뒤에도 33만5000㎡에 달하는 박물관과 가족공원은 국가공원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2021년 12월 국토교통부가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변경계획안’을 고시하면서 편입됐다. 용산국가공원은 비로소 한강 쪽 박물관 인근까지 포함한 전체 300만㎡의 광대한 영역을 갖게 되면서 경내 건물 신축·재개발을 규제할 수 있게 됐다.

이미 2007년 용산공원 조성특별법이 제정됐는데도 14년 뒤에야 국가공원 체제가 온전히 정비된 데는 배경이 있다. 2010년대 이후 여러 정부 부처와 정치권에서 땅따먹기 싸움하듯 공원 영역에 자기네 부처 건물 건립이나 임대주택 단지 건설을 꾀하려는 시도를 남발해 혼선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병폐를 막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신축을 최대한 제한하는 공원 운영체계를 2021년 뒤늦게 구축한 것이다.

기념관 터로 지목된 용산가족공원 공지는 당연히 국가공원 관내다. 국토부가 주도 부처가 되어 대한민국 1호 국가공원으로 추진해온 용산공원 정비기본 계획을 보면, 국가공원 안 구역은 새 건축물 최소화가 기본 원칙이다. 신규 시설은 기존 건축물과 시설 안에 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되, 신규 건축물이 필요한 경우에는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하게 돼있다. 위원장은 2명인데, 1명은 국무총리이고, 다른 1명은 민간위원 중 대통령이 지명한다. 두 위원장과 30명 이내로 구성된 위원들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건물 신축 논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사실상 어렵다. 심의 과정에서 터와 시설의 역사적 정합성, 생태성, 교통 조건 등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2년 안에 기념관을 짓겠다는 재단 쪽 주장은 무리수에 가까운 희망사항이다.

용산국가공원은 원래 광화문과 세종로 사대문 도심부터 이어지는 국가 상징 공간의 남북 축선에 있다.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 축선에 들어가는 국가 문화 시설들은 국민이 공유하는 헌법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인 전제로 깔고 있다. 1960년 3·15부정선거로 쫓겨난 이승만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에 배치되는 인물이다. 국민 상당수는 국가 상징 공간 옆 기념관 존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외세의 군대로부터 땅을 되찾아 역사시민공원으로 만든다는 취지 아래 지난 20여년간 정부와 서울시, 민간 전문가들이 협력해 운영체계를 구축해온 공원 일대 땅을 이승만이 쟁취한 한미동맹의 산물이라는 전혀 다른 명분으로 끼어들어 점유하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시까지 나서 기념관 건립을 속도전으로 강행한다면 완공 이후에도 시설 앞에서 반대하는 이들의 집단행동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건축사가인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미국 워싱턴의 링컨, 제퍼슨 등 대통령기념관들이 100년 이상 사회적 논의를 통해 도시의 핵심 공간에 안착하면서 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오랜 국민적 교감 과정 없이 건립을 강행한다면 긁어 부스럼을 넘어 극심한 이념 갈등의 표적이 되는 장소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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