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겉멋’에 취한 한국…식량·에너지 자립, 국방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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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그만큼 성공에 취해 겉멋만 많이 들었다. 식량·에너지 안보, 국방 등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은 무시한 채 당장 눈에 보이는 지표들에만 매달려 있다."
지난달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남겨진 과제를 정리한 역사서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를 펴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88)은 최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와 만나 한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혁명을 능가하는 수준의 국가 개조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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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생존 위해선
혁명 능가하는 수준의
국가 개조 불가피한 상황
인구 600만 불과 스위스
63년부터 핵 방공호 의무화
식량 자급하고 식품사 키워
연금 개혁 동력 만들려면
대통령·총리는 받지말아야
지난달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남겨진 과제를 정리한 역사서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를 펴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88)은 최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와 만나 한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혁명을 능가하는 수준의 국가 개조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조차도 진심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다”며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이미 망해가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김 이사장이 이 같은 결론에 이른 건 한국이 지난 70여 년 간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동안 정치·사회·산업·교육 현장 곳곳에서 나타난 병폐들을 직접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이를 ‘도착적 근대화’라고 표현했다. 가까스로 근대화는 이뤘지만 온갖 상황이 뒤바뀌고 어그러졌다는 뜻이다. 그는 “극단의 성공은 동전의 양면처럼 계속해서 극단의 실패를 낳고 있다”며 “급격한 출산율 저하, 사회 분열, 왜곡된 국제화, 단절과 증오의 반(反)정치, 역성장, 세계 최고 자살률, 극단적 개인주의 등이 그 결과”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마냥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고 지름길, 샛길 대신 바른 길,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면 극복할 수 있다”며 “국민이 안전하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국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환경과 과학, 에너지, 먹거리, 경제, 문화, 안보를 발전시킨다면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물론 종말론적 위기를 맞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선도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명섭 교수와 김진현 이사장 간 일문일답.
▷김 교수=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
▷김 이사장=국가의 올바른 모습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당장 처한 현실에 급급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설정도 하지 않은 채로 논쟁만 하고 있다.
▷김 교수=책에서도 단절과 분열, 증오의 정치에 대해 지적하셨는데.
▷김 이사장=지금 한국 국회는 국회가 아니다. 나라 문제를 놓고 회의장에서 토론하고 수기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시위를 하는가 하면 표심을 놓칠새라 허구한 날 지역구에 쫓아간다. 어떤 의원은 그걸 잘한 일인냥 자랑까지 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모 지역구의 국회 출장소 소장’일 뿐이다. 회의장에선 너도 나도 카메라에 잘 잡히는 자리에만 앉아 있다. 이런 국회를 야단쳐야 할 언론도,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도 모두가 완전히 마비돼 있다. 모든 게 보여 주기 식인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리 없다.
▷김 교수=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김 이사장=정말로 바른 교육이란 무엇인지, 바른 정치, 바른 사법, 바른 국회, 바른 의료, 바른 노사관계, 바른 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깊이 있게 성찰하는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재평가하고, 우리가 스스로 하나된 역사관을 확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상은 있어도 대한민국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상징적인 장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갈등과 대립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한 데는 역대 대통령들의 공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자리에서 내려온 대통령이 있었는가. 이 역시 비극이다. 최근에도 광복회와 일부 단체들이 국가 광복절 행사 참여를 거부하는 등 국가답지 못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김 교수=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분열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석이 제각각이고 그로 인한 갈등이 심각하다 보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염증마저 일어나고 있다. 남북 분단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남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김 이사장=하지만 세금으로 국가 기념관을 짓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균형감 있는 역사관을 심어주고, 과거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올바른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교육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김 교수=사실 교육도 제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 이사장=결국 당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헌 사람들이 새 사람이 되는 방법뿐이다. 예컨대 4·19 혁명이 일어나도록 만든 사람들, 5·16 군사정변에 가담해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 사람들이 자기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고 진심으로 우리 사회에 용서를 구하는 게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
연금 개혁이나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 빚이 늘어 국민연금을 받는 연령을 늦추고 지급 액수도 조절을 해야 하는데 연금 개혁의 동력을 만들려면 먼저 역대 대통령, 국무총리 같은 사람들부터 연금을 받지 말아야 한다. 1961년 산아를 제한하는 잘못된 가족계획사업을 내놔 인구 소멸의 위기를 맞게 한 이들도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한국은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고출산율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류 역사상 최저 출산율 기록을 매년 한국이 경신하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2033년에는 인구가 5000만명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혁명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김 교수=국가는 안보 공동체이자 생태 공동체, 문화 공동체다. 특히 먹거리와 에너지의 ‘자강(自强)’을 강조하셨는데.
▷김 이사장=스위스와 비교해보면 한국이 얼마나 형편 없는 결손 국가인지 알 수 있다. 스위스는 인구도 600만명밖에 안 되고 한국의 K팝, K드라마 같은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국가의 기본에 충실하다. 모든 가정은 항상 2주 분량의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 스위스에서 그해 재배된 밀이나 보리는 전량 창고로 간다. 시골에 가면 마을회관마다 위급 상황 시 실행해야 할 식량 자급(재배) 매뉴얼이 단계별로 마련돼 있다. 땅도 좁고 모든 게 부족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MSC(해운), 네슬레(식품·농산물), 로쉬(화학·의약품) 등 세계적인 회사를 갖고 있다.
또 스위스는 1963년부터 민방위법에 따라 새 건물을 지을 때 핵 방공호 건축을 의무화했다. 현재 시청이나 병원, 학교 등 공공시설에 약 30만개의 방공호가 구축돼 있고 이와 별도로 5000개가 넘는 핵 방공호가 설치돼 있다. 스위스의 전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 스위스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 시설들은 보름 단위로 식량과 자원을 관리한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북한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5대 핵 보유국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유일한 나라인데도 국민들을 위한 핵 방공호는커녕 전시 훈련조차 하지 않는다.
▷김 교수=책에서 ‘애국적 친미, 친일, 친중, 친러파가 많아져야 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4대 강국(미·중·러·일)에 둘러싸인 한국에게는 이들 국가 모두와의 친선 외교가 중요하다는 말씀인데, 아마도 가장 어려운 것은 애국적 친일이 아닐까 싶다. 이승만 대통령도 애국적 친미는 실천했지만 애국적 친일은 하지 못했다. 미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김 이사장=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친미를 넘어 친중, 친러, 친일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애국적 친일이라는 게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도 남북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일본에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사과나 양보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다만 인공지능(AI), 합성생물학 등 전 인류가 대변혁을 겪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과거에 대한 편견이 없는 젊은 사람들 중에 과거사와 별개로 일본과의 필요한 친선 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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