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자백’에도 음주운전 기소 못해…사고 내고 숲으로 도주한 40대

도주 후 체포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현행법상 기소 불가
검찰, 도주치상 등 혐의에 징역 5년 구형…“죄질 매우 불량”

(시사저널=박선우 객원기자)

7월10일 오후 제주 한라산 516도로에서 차량 3대와 버스를 들이받고 도주한 4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당시 피해 차량 블랙박스 영상 캡처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무면허 운전 중 차량 4대를 추돌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40대가 징역 5년형을 구형받았다. 피고인 측은 "생계를 위해 무면허 운전이 불가피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여경은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40대 A씨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날 검찰은 A씨의 죄질에 대해 "피해 정도와 사고 후 도주한 경위 등을 봤을 때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탄했다.

반면 A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A씨)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다"면서 "무면허인 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운전을 해야했고, 출감하면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도 회복시켜 주기로 다짐하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A씨 본인 또한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출감하면 3년안에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시키도록 하겠다"면서 "기회를 주시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A씨는 지난 7월10일 오후 6시35분쯤 한라산 성판악휴게소 인근 516도로 서귀포 방면에서 무면허 운전 중 중앙선 침범으로 마주오던 차량 2대를 추돌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뒤따르던 차량 1대가 A씨에 의해 추돌당한 차량을 들이받는 2차 사고까지 발생했다.

A씨는 도주를 택했다. 그는 앞 범퍼가 파손된 차량을 몰고 도주하다 12명의 승객이 탑승한 버스를 정면으로 추돌하는 추가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운전기사, 승객 등 총 3명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받아야 했다. 반면 갈비뼈 골절 부상을 입은 A씨는 차를 버려둔 채 한라산국립공원 내부 숲으로 도주했다.

A씨는 사고 발생 후 약 14시간만인 7월11일 오전 8시20분쯤 한라생태숲 인근 갓길에서 검거됐다. 당시 A씨를 신고한 건 전날 차량 사고 목격자인 B씨로서, 그는 사고 직후 A씨가 차량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던 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거된 A씨는 사고 전 음주 사실을 인정했다. 수사당국은 A씨가 제주 시내 모 음식점에서 반주를 하는 CCTV 영상과 '이후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음주운전은 결국 A씨의 기소 혐의에서 빠졌다. 경찰이 사고 후 도주했던 A씨를 긴급체포할 당시 음주측정을 진행했으나 혈중알코올농도가 0%로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곧장 채혈을 진행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를 의뢰했으나 여기서도 음주 수치는 검출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하려면 반드시 혈중알코올농도가 확인돼야 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일명 '위드마크 공식'이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역추산의 기준점이 될 수치를 필요로 한다. 음주 수치가 전혀 검출되지 않은 A씨의 경우, 자백만으론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편 A씨는 2018년 차량 절도 관련 범행으로 운전 면허를 취소당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