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나무위키까지 제재? 검열 논란 불가피
제재 방안 마련 중인 방심위에 나무위키도 지침 개정 추진
정보 등재 조건에 '제도권언론'… 인터넷언론·주간지는 빠져
"외압에 굴복하면 검열 이뤄져" 이용자 반발에 전문가도 우려
나무위키 규제 피하던 방심위, 갑자기 적극 대응 나선 배경은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에 제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뒤 실제로 나무위키에서 개인정보 관련 지침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와 함께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사전 검열 우려가 나온다. 나무위키는 여러 이용자들이 각자가 가진 정보를 집단지성으로 공유해 제공하는 사이트다.
연합뉴스는 지난 18일 <방심위, '사생활 침해 정보' 쏟아지는 나무위키 손본다> 기사에서 “방심위가 일반인에 가까운 개인에 대해서까지 사생활 침해 정보를 담아 논란이 지속 중인 '나무위키'에 대해 제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방심위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신고인의 사생활 또는 초상권을 침해하는 정보에 대해 신고인이 원치 않으면 삭제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라며 “사실 적시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나무위키 편집지침'에서 '개인정보 관련 서술의 입증책임 강화를 위한 특정인 관련 문서 문단 개정' 토론 글이 공유됐다. 한 이용자는 “최근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나무위키의 서술에 대한 외부의 지적이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개인정보 관련 서술에 대해 편집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서술 존치 측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안한다”고 했다. 나무위키 편집지침은 모든 문서 작성 시 적용되며 개정안은 나무위키 측 관리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이용자들의 개정 토론을 거쳐 확정된다.
이용자가 제시한 주요 개정 사항은 △개인정보의 서술은 최소한 공익성이 존재해야 하며,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 △개인정보와 관련된 서술에서 입증책임이 서술 존치 측에 있도록 변경 △'합법적으로 공개된 정보'에서 요구하는 기준 중 하나인 '언론매체의 보도'를 '제도권 언론의 보도'로 강화하는 것 등이다. 이 이용자는 “방통위 내지 방심위와는 무관하게 진행 중인 토론”이라고 덧붙였다.
“외압에 굴복하면 추가적 검열 이뤄질 가능성 높다”
토론에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한 이용자는 “가십성 기사를 근거로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임의로 기재하는 것에 매우 회의적이었다”며 “입증 책임 부여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다른 이용자는 “(나무위키를 둘러싼) 외압의 진정한 목적은 방심위원장을 포함한 정치인의 사건사고 등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외압에 굴복할 경우 정치인 등재 원천금지 등 추가적 검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추진 중인 나무위키 개정안에는 정보 공유 기준이 '언론매체의 보도'에서 '제도권 언론의 보도'로 수정돼 있다. '나무위키 기본방침'에 따르면 제도권 언론은 △뉴스통신사 △일간지 △방송사 등으로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신문과 시사IN 등 주간지가 빠져 있다.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이들의 비판 보도가 자의적인 기준을 이유로 나무위키에 게재되지 못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나무위키에서 다루는 정보들은 대부분 인터넷에 이미 알려져 있는 정보들이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공적 관심 사안, 알권리 대상이 되는 정보들이 다수”라며 “방심위와 같은 기구가 특정 커뮤니티를 향해 제재를 예고하는 건 사실상 검열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공인에 대한 정보가 차단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나무위키는 이미 당사자가 삭제를 요청하면 조치 후 '투명성보고서'를 통해 절차를 공개하고 있다. 정치를 그만뒀으니 페이지를 삭제해달라는 요청부터 초상권 침해 주장까지 요청 사유도 다양하다. 이미 자율규제가 작동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검토나 명확한 사유 없이 방심위가 적극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손지원 변호사는 “확실하게 불법성이 판단되는 게 아니고서야 사실상의 행정기구가 인터넷 공간을 손보겠다고 나서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이라며 “집단지성으로 운영되던 나무위키의 본질이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보 제공의 역할을 하는 건데 알권리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적극 대응 배경엔 정치적 의도?
나무위키가 제공하는 정보의 '불확실성'은 항상 논란이 있어왔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잘못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질 수 있다는 우려와 각종 차별·혐오 표현에 대한 적절한 제재가 없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방심위도 나무위키에 게시물 삭제 혹은 통신사(ISP, 인터넷서비스사업자)에 URL 차단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은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방심위는 나무위키에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통령 및 국회가 위원 추천권을 가진 방심위가 온라인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플랫폼의 자율규제를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합의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배우 김상중이 자신의 나무위키 '흑역사' 페이지가 명예훼손이라며 민원을 신청했지만 '해당없음' 의결됐다.
당시 사무처는 “신고인으로서는 다소 불쾌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해당 내용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내용인 점, 신고인 개인을 비방하기보다 신고인에 대한 정보 공유 목적으로 게시된 것으로 보이는 점, 대중의 관심을 받는 신고인의 직업적 특성도 일정 부분 감안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신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으로 보기 어려워 해당 없음 권유드린다”고 했다. 당시 윤성옥 방심위원도 “사법적으로 어떤 결정이 없는 한 우리가 시정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본래 9인으로 구성되는 6기 방심위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 추천 몫 3인(류희림·강경필·김정수)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야권 몫의 5기 방심위원을 선택적으로 위촉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 반발하며 국회 몫 위원을 추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4기 방심위원을 지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방심위가 담당하는 문제는 맞는데 좀 뜬금없는 게 사실이다. 갑자기 왜 그러냐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할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며 “방심위의 섣부른 판단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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