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춘(春)자 돌림술 호산춘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근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좋은 술을 가리켜 '명주'(名酒)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맛과 향취가 특히 좋은 고급술은 당나라 때부터 '춘주(春酒)'라 명명했다.
술 이름에 뛰어난 술을 가리키는 춘(春)이 들어가면 거를 술이 없다고들 한다.
우리나라의 술 중 이름에 춘이 들어간 술로는 서울의 '약산춘', 대전의 '노산춘', 경기도의 '동정춘'·'벽향춘', '옥지춘' 등이 있다.
'호산춘'(壺山春)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두 종류가 있고 최근에 복원한 한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인 여산 호산춘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천호산(天壺山)이라는 산이 있어 여산에서 빚은 술을 호산춘이라고 불렀다. 이 술은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 선생의 가문을 통해 제조 방법이 전승된 가양주다.
이병기 선생의 25대 조부인 이현려는 고려 시대인 1156년부터 1203년까지 왕의 검식관인 지다방사(知茶房事)를 지냈다고 한다. 호산춘은 그 당시부터 제조 방법이 개발돼 전해졌다.
현재 여산 호산춘을 빚는 방법을 보유하고 있는 이는 이병기 선생의 조카인 이연호 명인이다. 이 명인은 자신의 어머니인 이경희 여사에게서 여산 호산춘의 제조 방법을 전수받았다.
이 술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제조 방법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도 옛 제조 방식을 잃지 않고 전승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술이다.
여산 호산춘은 2018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됐다. 이연호 명인은 "호산춘은 익산 여산의 특산주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은 관계로 유사한 이름의 호산춘이 난립해 혼란을 주는가 하면 자칭 호산춘 명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전통주 호산춘의 역사에 흠집을 내고 있다"며 "이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호산춘 본고장인 여산을 앞에 넣어 '여산 호산춘'으로 도 무형문화재에 신청해 지정받았다"고 말했다.
찹쌀과 멥쌀, 누룩으로만 빚는 여산 호산춘은 끓는 물로 쌀가루를 반죽하여 밑술을 빚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또 다른 호산춘은 문경 호산춘이다.
문경 호산춘은 1989년 레이건 미 대통령의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1990년부터 상업 양조를 시작했다. 이후 1991년에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주변 지역에 모여 살고 있는 장수 황씨(長水黃氏) 집안의 가양주로, 이 집안은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다.
문경 호산춘은 약 200년 전 당시 여유 있는 생활을 하던 장수 황씨들이 향기롭고 맛있는 술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시(詩) 짓기를 즐기는 풍류객 황의민이 자기 집에서 빚은 술에 본인의 시호인 호산(湖山)에 춘(春)자를 붙여 '호산춘'(湖山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즉, 여산 호산춘과는 한자가 다르다.
문경 호산춘은 여산 호산춘과 마찬가지로 찹쌀과 멥쌀, 누룩으로 빚지만, 여기에 솔잎이 추가돼 솔향이 그윽하게 나는 특징이 있다.
문경 호산춘은 신선들이 탐낼만한 술이라 하여 '호선주'(好仙酒)라고도 불렸다.
그래서인지 상자에 단원 김홍도 군선도(群仙圖)의 한 부분이 그려져 있다. 군선도는 김홍도가 32세(1776년)에 그린 그림으로 국보로 지정돼있다.
군선도는 서왕모(西王母)의 집에 복숭아가 무르익자, 8인의 신선이 약수를 건너 초대받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단원이 살았던 18세기에 신선 이야기가 유행해 신선 그림뿐만 아니라 책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에 조선은 다양한 농사법의 개발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사람들은 그런 생활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장수를 꿈꿨다. 그래서 수백 년을 산다는 신선을 부러워하며 신선 그림을 많이 찾던 시기였는데 단원이 신선을 잘 그려 큰 인기를 누린 것이다.
군선도는 원래 8폭 병풍이었으나 원소유자가 6·25 때 그림만 잘라 피난을 가게 돼 현재는 3개의 족자로 분리 표구돼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돼있다.
그리고 최근에 복원된 호산춘이 한 종류 더 있다. 양주방, 임원십육지 등 고문헌의 기록을 바탕으로 100일 동안의 항아리 발효 및 숙성을 이용해 조선시대의 여산 호산춘을 복원한, 2023년 우리술 품평회 대상을 받은 수블가 (대표 차영태) 의 '두두물물(頭頭物物)'이다.
'두두물물'은 '모든 만물이 도이고 진리'라는 선가의 용어로 술독 안의 효소, 효모 등 모든 미생물도 조화를 이뤄 좋은 결과를 이루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붙은 술의 이름이다. 수블가는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찹쌀과 멥쌀을 이용해 빚었다.
호산춘의 복원으로 현대에 신선을 꿈꾸는 이들인 '주당'들도 덩달아 신이 났을 것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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