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사라진 '북한 비핵화'…미 민주당 정강정책 왜 바뀌었나

남승모 기자 2024. 8. 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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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대선을 앞두고 19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작됐습니다. 앞서 공화당이 그랬던 것처럼 나흘 동안 민주당의 모든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전당대회에서는 대선에 나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를 공식 선출하고 이들의 수락 연설을 듣게 됩니다. 해리스 부통령과 월즈 주지사의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이들의 집권 비전을 엿볼 수 있을 걸로 기대됩니다. (평소 해리스의 연설 스타일로 볼 때, 적어도 지난달 제가 취재를 갔던 공화당 전당대회 트럼프 후보 수락 연설처럼 길고 두서없는 연설이 되지는 않을 걸로 보입니다.)
 

베일 벗은 2024 미국 민주당 정강정책

전당대회에서는 바뀐 대내외 환경에 맞춰 새로운 정강정책도 발표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등 모든 분야가 망라돼 있지만 민주당의 2024년 정강정책에서 우리 눈에 가장 띄는 건 북한 관련 내용입니다. '북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새 정강에서 사라진 겁니다. 2020년 정강에는 "우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이고 협력적인 외교 캠페인을 구축할 것"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북한 비핵화 대신 강조된 건 '동맹'이었습니다. 새 정강에서 민주당은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들과 더불어, 복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북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이 가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해왔다"며 "한국, 일본과의 3국 협력 강화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와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한의 불법적인 미사일 역량 구축을 포함한 북한 도발에 맞서 동맹국, 특히 한국의 곁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새 정강에는 민주당이 항상 강조해오던 북한 인권 관련 내용도 빠졌습니다. 2020년 정강에는 "우리의 동맹국들과 함께, 그리고 북한과의 외교를 통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지역에서의 호전성에 의해 야기되는 위협을 억제 및 통제할 것"이라고 적시돼 있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잊지 않을 것", "민주당원들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지하고, 북한 정권이 총체적 인권 유린을 중단하도록 압박할 것"이란 내용도 있었지만 새 정강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큰 의미 없는 듯' vs '민주당 대북 전략 변화'


하지만 정작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한 비핵화나 인권 문제가 민주당 새 정강에서 빠진 데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먼저 4년마다 새롭게 발표하는 정강정책은 어디까지나 대선 승리를 목적으로 한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국내용 성격이 강하다는 겁니다. 또 정강정책은 당 차원에서 만드는 것으로 해리스 캠프의 외교안보 라인이 관여한 것도 아니며 사실 외교안보 정책을 구체적으로 다룰 전문가들은 아직 다 인선이 되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강정책에서 북한 비핵화나 북한 인권 관련 문구가 빠졌다고 민주당의 대북 정책이 바뀌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현재 한미, 혹은 다자회의 석상에서 민주당 정권인 미국 정부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북한 비핵화와 북한 인권 개선이라는 겁니다. 당에서 (한미일 동맹 강화 등) 바이든 정부의 성과를 부각시킬 수 있게 문구를 다듬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비핵화나 인권 관련 부분이 빠졌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쪽에서는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4년 전과 달리, 재집권을 노리는 여당으로서 좀 더 현실을 반영한 한반도 정책을 제시한 거란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공허해 보일 수 있는 비핵화나 대북 외교 관련 언급 대신 한미일 공조를 통한 대북 억제력 강화에 대북 정책의 방점을 찍겠다는 기조를 보인 거란 겁니다. 또 틈만 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외교를 자랑하고 재집권 시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한 거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의 엘렌 김 선임연구원도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김 선임연구원은 북한 비핵화나 북한 인권 관련 언급을 뺀 것이 의도적일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바이든 정부 4년 간 대북 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러 간 밀착이 가속화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북한이 극렬하게 거부하고 있는 비핵화나 인권 문제를 직접 명문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가 그간 줄기차게 이야기해온 '조건 없는 대화'에 북한이 보다 거부감 없이 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걸 수 있단 겁니다.

중국과의 경쟁,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 등 당면한 안보 현안이 산적한 미국 입장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는 늘 논란이 돼 왔습니다. 집권당인 미국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북한 비핵화가 빠진 새 정강정책도 단순히 우선순위에 밀려 의도치 않게 빠진 건지, 아니면 앞서 언급한대로 공화당과의 대북 정책 차별화, 혹은 대북 전략 차원의 복안이 깔린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정확히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고, 또 어떻게 하면 우리 입장을 좀 더 반영할 수 있는지 파고들 수 있는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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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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