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와 소로스의 ‘검찰개혁 운동’…선거로 뽑힌 검사는 다를까
새 검찰총장 후보자인 심우정 법무부 차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날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명과 역할을 다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지명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 출장 조사에 대한 질문에는 “검찰 구성원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황제 조사’라고 지탄하는데 검찰총장 후보자라는 사람은 ‘법과 원칙에 따른 일’로 여긴다니, 그러면서 어떻게 국민 신뢰를 얻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검찰이 국민과 얼마나 동떨어진 집단인지 다시 한 번 실감케 합니다.
지난 번 이야기(3회)에서는 검찰이 민의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선택한 검사 선거제도를 살펴봤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우리나라 검찰이 너무도 당당하게 민의를 거스르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시민들이 검찰을 견제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가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사를 선거로 뽑으면 시민들의 뜻을 항상 제대로 받들까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미국 검사 선거제도의 한계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미국판 검찰개혁 운동인 ‘진보적 검사 운동’,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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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선출됐으나 여전히 군림하는…
선거제도 도입 당시부터, 검사가 정당 추천으로 출마해 당선될 경우 당파적으로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실제로 사건 처리에서 선거 때 지지 기반이 됐던 이들을 봐주는 검사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요한 정치적 인물이 연루된 사건을 함부로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편파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위험이 크고, 반대로 이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 재선에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선거라는 정치 작용을 통해 검사를 뽑는 게 ‘정치 검찰’을 억제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게 되는 역설입니다. 현재 미국 검찰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에서도 정치적 인물에 대한 수사·기소의 편향성 문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비판이 집중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선거를 의식한 검사는 여론의 주목을 받는 큰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다수 여론에 편승해 소수집단을 불평등하게 대우하기도 합니다. 엄정한 법 집행이라는 명분 아래 범죄 예방·교화보다는 강경 처벌에 치중하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게 업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검찰의 위상과 권한도 계속 강화됐습니다.
여기에는 선거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작용했습니다. 검사 선거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방식으로 치러지지 않고 현직 검사가 쉽게 재선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약 60%의 검사는 선거에서 경쟁자가 나서지 않은 채 사실상의 찬반 투표를 치를 정도입니다. 경쟁자가 나서더라도 현직 검사가 승리하는 경우가 50~60%에 이릅니다. 정치인을 선출하는 다른 선거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 현직 프리미엄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선출된 검사들은 시민들의 뜻을 받드는 외형을 취하면서 점차 자신의 권력을 키웠고, 이제는 시민들 위에 군림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선거를 통한 민주적 통제라는 제도적 의미가 적지 않게 퇴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지원으로 본격화한 ‘진보적 검사 운동’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미국판 검찰개혁 운동이 ‘진보적 검사 운동’(progressive prosecutor movement)입니다.
2015년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혁적 성향의 검사 후보들에게 선거자금을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여러 선거자금 기부 단체가 이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공약을 내건 검사 후보들을 지원했습니다.
‘검찰 운영의 투명화, 과도한 폭력을 행사한 경찰관 엄벌, 빈곤과 연관된 사소한 범죄에 대한 불기소, 이민·낙태 등 정치적 논쟁 사안에 대한 편향적 기소 중단, 억울하게 기소된 사건을 찾아내 바로잡는 검찰청내 별도 부서 운영, 빈곤층의 수감률을 높이는 불평등한 보석제도 개선, 인종간 불평등한 처벌과 무리한 기소 중단….’
이 운동의 성과로 당선된 대표적 인물들이 2016년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의 킴 폭스 검사(판사 출신), 2017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킴벌리 가드너 검사(부검사 및 주 하원의원 출신),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래리 크래스너 검사(인권변호사 출신), 2019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체사 부딘 검사(연방법원 연구관 및 국선변호인 출신) 등입니다. 체사 부딘 검사는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버니 샌더스의 지원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진보적 검사 운동’이 본격화하기 이전에도 이들과 유사한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선구적 검사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2004년 흑인으로서 처음,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검사에 당선됐습니다. 2010년에는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에도 올랐습니다. 역시 첫 흑인·여성 검찰총장이었습니다. 진보적 검사 운동이 본격화한 뒤로는 백인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검사직에 유색인종 여성이 다수 진출하게 됐습니다. 이 운동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대목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선에 처음 도전한 2020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자신이 ‘진보적 검사’였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이 역시 진보적 검사 운동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진보적 검사 운동’의 성과와 한계
2023년 12월 기준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 인구 규모 상위 36개 선거구 중 13개 선거구에서 진보적 검사가 선출돼 일하고 있습니다. 전체 미국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지역들을 진보적 검사가 관할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한 대도시들입니다.
진보적 검사 운동은 형사사법체계에서 검사의 권한이 누구보다 크다는 인식과 함께 이 권한을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켰습니다. 검사 선거에서 서로 다른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경쟁함으로써 검찰권 행사에 민의를 반영한다는 검사 선거제도의 의미를 살려냈습니다. 이같은 흐름은 판사나 보안관 선거로도 확산 중입니다.
진보적 검사 운동이 성과를 거두자, 역풍도 일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총기 사건이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범죄가 확산하는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이것이 진보적 검사들의 범죄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 탓이라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는 없었음에도 현직에 있는 진보적 검사들이 정치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체사 부딘 검사는 2022년 주민투표를 통해 소환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임자가 들어선 뒤 범죄율이 딱히 낮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같은해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회는 필라델피아의 래리 크래스너 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조사위원회는 탄핵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킴벌리 가드너 검사는 2023년 공화당 의원들의 공격으로 결국 사임했습니다.
이른바 ‘좋은 검사’를 배출함으로써 형사사법체계의 정의와 공정, 인간적 사법을 실현하려는 흐름인 진보적 검사 운동은 의미와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진보적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더라도 보수적 유권자들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렵다는 점, 그동안 광범위하게 형성된 검찰의 관행과 조직 생리를 개인의 힘으로 깬다는 게 쉽지 않다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됩니다. 한편으로는 검찰을 개혁하기 위한 이 운동이 오히려 검찰의 영향력과 조직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독재자에게 선량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선거로 뽑은 공직자라고 해서 모두 민주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건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형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과 소통·교감하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권한을 휘두르면, 비록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이라 할지라도 민주주의를 찌르는 칼이 됩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진리가 일깨우듯 권력남용이라는 악의 근원은 권력 그 자체에 있습니다. 공직자에게 독재가 가능할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뒤 그 권한을 스스로 민주적으로 행사할 것을 기대하는 건 위험한 도박입니다. 선출된 공직자든 임명된 공직자든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선거제도가 권한남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억제 기능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 처방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 검찰제도에 대한 최근의 비판론도 이 지점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민의를 잘 수렴할 검사를 선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검사의 권한 자체를 제한하고 외부의 감시·통제를 더 강화하는 게 본질적인 개혁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독재자들이 지배하는 체제에 맞서야 한다. 그들에게 선량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체제를 요구함으로써.” 하버드대 로스쿨 법학지에 실린, 진보적 검사 운동을 성찰한 논문(The Paradox of “Progressive Prosecution”)의 결론입니다.
선출되지도 않은 영원한 권력, 대한민국 검찰
우리나라 검찰은 어떨까요?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고 교체할 수도 없는 검찰이 지금처럼 막강한 권한을 특정 정치권력에만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휘두르며 국가의 발전, 민주주의 성숙, 그리고 인권의 진전을 가로막는 상황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2011년에 출간된 책 ‘검찰공화국, 대한민국’(김희수·서보학·오창익·하태훈 지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형인 검찰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검찰처럼 막강한 권한과 재량권을 가진 국가기관이 국민의 선출을 통한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않고,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선출되지 않은 영원한 권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검사 선거제도라는 발상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16년 지방검사장 직선제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는 조국혁신당이 검사장 직선제를 공약했습니다. 참여연대도 장기적 검찰개혁 방안의 하나로 검사장 직선제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검찰처럼 강력한 기관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은 사례는 발견하기 힘들다. 또한 이런 막강한 권한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의 공론이 형성되고 수렴될 수 있는 아무런 기회도 통로도 없다.”(김진욱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다만 야권이나 시민단체 모두 검찰개혁의 우선순위에서는 수사-기소 분리 등 검찰권 분산에 더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진보적 검사 운동에 대한 성찰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사실 검사 선거제도는 미국 검찰제도의 두드러진 한 측면일 뿐입니다. 검사가 아닌 시민들이 기소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대배심제라든가, 연방 검찰과 각 지방 검찰이 상호 견제하는 조직 구조 등 우리가 주목할 만한 지점들이 더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검찰의 독재화를 막기 위해선 검찰권 행사에 민의를 반영할 제도적 장치와 함께, 권한 분산을 통한 기관간 상호 견제, 부당한 검찰권 행사에 대한 확실한 응징 수단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이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9일3일 뵙겠습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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