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와 어음 : 길고도 질긴 탐욕의 생명력 [視리즈]

김다린 기자 2024. 8. 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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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폐지 약속했던 어음의 현재 1편
악화일로 걷는 티메프 사태
정부 나섰지만 묘수 없어
티메프 사태 어음과 비슷한 꼴
금융과 탐욕이 얽혔단 점 같아
수십년 전 폐지 부르짖었지만
결국 개선도 없이 흘러온 어음
규율 없을 때 탐욕 고개 들어
티메프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티메프(티몬ㆍ위메프) 미정산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티메프 측은 현재 채권자를 구제할 길을 찾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티메프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자율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 승인 요청도 함께 넣었다. ARS는 회생 절차 개시 전에 자율적으로 변제계획과 구조조정에 합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다.

티메프는 다른 투자자로부터 2000억원 이상의 자금 유치를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난항이 점쳐진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티메프에 거액을 투입할 투자처가 있을 리 없어서다. 티메프로부터 정산금을 받지 못한 셀러들은 "파산이나 회생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시급한 구제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런 비극이 벌어진 배경엔 복잡한 이야기들이 깔려 있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티메프는 플랫폼이다. 고객의 돈을 중개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어겼다. 판매대금을 두달가량 가지고 있었고, 이를 쌈짓돈처럼 썼다. 계열사를 나스닥에 상장하고, 회사 몸집을 불리겠단 '탐욕' 때문이었다.

기업이 탐욕을 부리는 역사는 길다.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다르지 않은 부분도 있다. 티메프 미정산 사태는 어음을 닮았다. 제품은 덜컥 받아 가고 돈은 나중에 주겠단 구조란 점에서 그렇다.

혹시 티메프 사태의 해결책도 어음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먼저 국내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자. 시기는 일단 블라인드 처리한다.

# article➊ 대통령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부담이었던 약속어음제도 폐지 방안 마련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약속어음 폐지에 따라 일시적으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자금경색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도 함께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 article➋ 한국은행은 연쇄부도와 흑자도산 등 중소기업의 목줄을 죄는 어음제도를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어음거래는 기업 간 신용수단으로서 순기능도 있지만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자금사정 악화 및 이자부담 가중 등 역기능이 크다"며 폐지론을 제시했다.

언뜻 비슷한 시기의 기사 같지만 아니다. article➊은 2018년 3월 13일자 전자신문 기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소ㆍ소상공인의 금융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금융혁신과제 마련을 촉구하는 자리에서 어음을 폐지하란 주문을 기사화했다. 어음 폐지는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이자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article➋는 1999년 10월 14일자 한국일보 기사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는 사이 수많은 어음이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는 바람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파산했다. 한국은행은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을 막고자 제도 폐지 의견을 냈다. 결국 20년 시차가 있지만, 내용은 같다. "어음 탓에 괴롭다"는 중소기업의 곡소리가 수십년째 울리고 있으니 아예 없애자는 거다.

수십년 전엔 중앙은행이, 수년 전엔 대통령이 '어음 폐지'를 외쳤지만 실제로 폐지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제도를 정교하게 바꾼 것도 아니다. 여야 정치인들은 때만 되면 '어음법 개정'을 부르짖었지만, 여전히 대금을 제때 갚지 못해 도산하는 기업이 나온다. 가깝게는 2년 전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때 그랬다.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그 시장을 규율하는 법이 없을 땐 항상 이런 문제가 생긴다. 지금도 우리는 티메프 미정산 사태를 "메스만 대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잘못된 판단이다. 탐욕의 생명력은 길고 질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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