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사피온 합병, 핵심은 ‘지분 6%’ 매각… SK 대주주 못 되는 속사정은

노자운 기자 2024. 8. 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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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4년 8월 19일 17시 33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업체 리벨리온과 SK 계열 사피온코리아가 합병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합병 비율은 2.4대 1로 결정됐고, 이에 따라 리벨리온의 경영진이 SK보다 1% 많은 지분을 가져 합병 법인의 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이번 합병의 핵심은 SK 측이 지분 3+3%, 즉 6%를 매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 법인을 SK 계열사에서 제외하기 위해 리벨리온과 SK가 장고 끝에 내놓은 결론이다. 공정거래법상 ‘내부 거래’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SK텔레콤과 AI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SKT 계열사 사피온코리아와 리벨리온 간 합병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사진은 본계약 체결 후 유영상 SKT CEO(왼쪽)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기념 촬영하는 모습. /SK텔레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과 SK텔레콤은 합병 비율을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해 온 끝에 2.4대 1에서 합의점을 찾았다(☞[단독] 리벨리온 몸값, 10조 써낸 주관사 후보도 있다... 사피온 합병은 2.5대 1 이하 예상). 당초 SK 측에서 2대 1을 제시했지만 리벨리온 측 주주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리벨리온의 기술진이 실사를 위해 미국 사피온 본사에 출장을 갔는데, 디테일하게 검토할 만한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리벨리온의 기술력이 월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본계약이 체결되기까지 양측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부분은 바로 SK 측 지분율이었다고 한다. SK가 대주주가 되지 않도록 합병 비율, 콜옵션 조건 등을 조정한 것이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의 지분 구조는 외부에 명확하게 공개가 안 돼 있다. 다만 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의 경우 박성현 대표 등 경영진이 총 36%를 보유한 대주주다. 사피온코리아는 미국 사피온INC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피온INC 지분은 SK텔레콤(62.5%), SK하이닉스(25%), SK스퀘어(12.5%)가 나눠서 전량 보유 중이다. SK하이닉스는 ‘SK하이닉스 아메리카’를 통해, SK스퀘어는 ‘SK스퀘어 아메리카’를 통해 사피온INC 지분을 간접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시리즈A 단계에서 총 600억원을 투자했던 하나금융그룹, 미래에셋벤처투자, 위벤처스 등 외부 투자자들은 컨버터블 노트(Convertible Note) 형태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직 에쿼티를 가진 주주로 인식되지 않는다. 컨버터블 노트란 ‘오픈형 전환사채(CB)’라고도 불리는 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 전환권을 행사해서 주식으로 바꾸거나 만기일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을 수 있다. 다만 CB와 달리 전환 가격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사피온INC 투자자들의 경우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한이 올해 말이다. 연말까지 전환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고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하는 구조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가 2.4대 1로 합병한다면, 합병법인에 대한 박성현 대표 등의 지분율은 25%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SK 측 지분율은 29%대로 추정되는데, 외부 투자자들이 컨버터블 노트를 주식으로 전환한다면 SK 지분이 희석돼 29%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

SK 측은 이 점을 고려해 지분 3%(합병 법인 기준)를 양사 합병 전까지 제3자에게 매각하기로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양측의 지분율이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는 파악이 안 되지만, SK가 3%를 정리한다면 리벨리온 경영진 지분율이 SK보다 1%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K는 그 외에도 지분 3%를 추가로 더 팔 수 있다. 박 대표 등 리벨리온 대주주에게 콜옵션을 부여한 것이다. 즉 SK가 합병 법인 지분 6%를 정리해 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오는 상황인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합병 법인이 계열 분리돼서 운영되는 게 신경망처리장치(NPU) 시장에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면적 이유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라지만, 실제로는 공정거래법과 관련된 속사정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양측이 합병 비율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때도 SK의 지분율이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될지 여부를 중요하게 논의했으며, 법률 검토도 거쳤다고 한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소속회사’가 그룹 내 계열사와 거래할 시, 비계열사와의 거래와 차등을 두는 행위는 ‘부당 내부거래’로 규정될 위험이 있다. 또 대규모 내부거래가 있을 때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공시할 의무가 있다. 즉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의 합병 법인이 SK그룹에 속해있다면 SK하이닉스 등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만약 SK가 지분 30% 이상을 소유한 최다 출자자라면, 합병 법인은 법에 따라 SK 계열 회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며 “다만 지분율이 20%대라고 해서 계열사에서 제외되는 게 아니라, SK그룹이 이사회 멤버 과반에 대한 선임권을 갖는 등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 여부를 정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에 명시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정위의 해석에 따라 SK 계열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SK는 지분 3%만 제3자에게 매각하면 되지, 왜 추가로 3%에 대한 콜옵션까지 리벨리온 경영진 측에 부여한 것일까. IB 업계 관계자는 “리벨리온과 SK의 지분율이 고작 1%만 차이 난다면, 향후 박성현 대표 등이 지분 일부를 팔 경우 다시 SK가 대주주가 될 리스크가 있다”며 “그런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콜옵션까지 부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SK 측은 지분 매각 옵션이 공정거래법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SK그룹이 합병 법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이슈도 없으며, 이사진을 꾸리는 것도 리벨리온이 주로 맡기로 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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