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서 국정원 간부 연기한 김선호 “혼자이고 쓸쓸한 인물 표현”
지난 14일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은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를 둘러싼 암투를 다룬다. 초인적 전사를 만드는 이 바이러스의 마지막 샘플이 사라지자 한·미 정보기관이 달려든다. 느와르 드라마답게 초반에 조연 수십명이 숨진다. 이들의 목숨줄을 쥔 인물이 국가정보원 최 국장. 19일 서울 종로구에서 최 국장을 연기한 배우 김선호를 만났다.
최 국장은 ‘폭군’에서 미국의 눈을 피해 바이러스 개발을 이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관련자들은 아군·적군 가리지 않고 모두 ‘청소’할만큼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인다. 통상 이런 역은 선 굵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맡기 마련. 김선호 역시 “오히려 다른 선후배 배우들이 했으면 말 한마디해도 믿음이 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셨다”며 “촬영하면서도 계속 감독님이 ‘괜찮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나리오 지문에도 최 국장은 ‘피곤해보인다, 초췌하다’가 굉장히 많이 적혀 있었다”며 “이 인물은 자기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무게가 어깨 위에 있기에 지극히 혼자이고 쓸쓸하지만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연기하면서 몸의 자세에 가장 중점을 뒀다. 최 국장이 말수를 아끼고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인물인만큼, 손짓과 고갯짓 하나에 의미가 전해지길 바랐다. 다른 이들의 희생이라는 심리적 무게감을 짊어진 인물인만큼 울컥하는 마음은 슬픈 눈빛에 담았다. 이런 노력 때문일까. 김선호는 “감독님이 이상하게 이번 작품에서 믿어주고 응원해주셨다”며 “계속 ‘좋은데, 괜찮은데’ 이러니 나중에는 거짓말인가 싶었다. 원래 감독님은 (연기가) 안 좋으면 안 좋다고 말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는 최 국장의 배경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다. 김선호는 최 국장에 대해 “어릴 때 발탁돼서 기관에서 가족 없이 키워져 요원이 되고 일찍 승진해 이너서클 수장이 됐다”며 “가족같은 선배들이 저를 믿고 희생하며 하나씩 죽어갔기에 이들의 희생이 어깨 위에 올려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국장은 자신의 신념이 선인지 악인지 모른 채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폭군 프로그램을 진행시켰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선호는 “감독님의 액션과 판타지적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폭군’ 촬영 중 감독님과 산책하며 이 세계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재밌어서 만화책을 보는 기분이었다”며 “한 번은 얘기를 듣다 ‘전쟁영화네요, 거의 반지의 제왕이네요’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또 ‘폭군’을 다룬 작품이 나온다면 저를 특별출연 정도로 써주시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며 “이번에 함께 해서 재밌고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김선호는 ‘폭군’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차승원을 보면서도 좋은 영향을 받은 듯 했다. 그는 “제 좌우명은 한결 같이 ‘다음에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라며 “이번 촬영장에서 느낀 건데, (차)승원 선배가 사람들이 지치지 않게 한마디 하는데 그게 빵빵 터지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취미도, 뭐도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차승원이 ‘이번 생에 이렇게 살기로 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저는 집 밖에 안 나가고 사람도 잘 안 만나요. 이런 걸 바꾸려 했는데, 왜 바꾸려 했지 싶더라고요. (차승원) 선배님이 ‘너 친구 없지? 나도 그래. 연기 잘 하고 내 생활에 집중하고. 난 이번 생은 이렇게 살려고 으하하.’ 이 말이 저한테 큰 도움이 됐어요. 왜 내가 취미 없고 이런 루틴을 갖고 있는 걸 부단히 바꾸려 했을까, 지금 연기 고민하기도 바쁜데…. (차)승원 선배한테 이번에 얘기 듣고, 배우로서 좋은 발전만 있으면 되겠다 많이 배웠습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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