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없는 글은 참고문헌 없는 논문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면접관은 해리 로젠펠트 메트로 부장이었다. 로젠펠트 부장은 우드워드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로젠펠트는 고개를 젓더니 “신문에서 모든 것은 출처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말했다거나 자료가 보여준다거나 취재원이 말했다는 등. 그는 “독자는 모든 것의 근거를 가능한 한 가깝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젠펠트는 우드워드의 무지에 경악했다. 우드워드의 건방짐, 대담함, 주제넘음보다 무지에 더 놀란 그는 다른 에디터들에게 팔을 흔들어보였다. 이 제스처로 표현한 메시지는 결국 이런 내용이었다.
‘이 친구 좀 보게나. 이 자는 여기에서 기자로 일하고 싶다는데 경력이 전무하고 심지어 대학 신문에서도 일한 적도 없다네!’
기사뿐이랴. 사실을 다루는 모든 글과 의견을 펴는 글에는 출처가 제시되어야 한다. 출처 제시는 영어로 attribution이라고 불린다. 논문을 작성할 때에도 출처 제시가 중시된다. 논문의 출처는 참고문헌으로 따로 제공된다. 희한하게도 국내 글에서는 출처 제시가 간과된다. 대학 교수가 쓴 글에도 출처가 없는 사례가 간혹 보인다.
놀랍게도 저자는 조선업을 하지 않으면 현대그룹을 파산시키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이 협박했다는 ‘이야기’의 출처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일화가 있다”며 전했다. 책 뒤의 참고문헌에도 이와 관련한 신문기사도 전혀 대지 않았다.
◇적절한 출처가 없다면 ‘억측’에 불과
사실을 다루고 그 바탕에서 주장을 내놓을 때에는 사실이 주춧돌이 된다. 사실이 아니라 소문을 바탕으로 올린 주장은 사람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억측에 그칠 뿐이다.
정부가 주도해 경제를 개발하던 시대에 추진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이 역점을 둔 사업은 조선과 기계, 철강 등 중화학공업 육성이었다. 정부는 3차 5개년 계획 수립을 확정하기 전,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업 참여를 권유했다.
정 회장은 해보겠노라고 답하고 차관 도입에 나섰지만 미국과 일본에서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만 받고 돌아온다. 그는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이 결과를 보고하고 포기 의사를 밝힌다. 김 부총리는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를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부담스러워한다. 그는 정 회장에게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자고 한다.
보고를 접한 박정희 대통령이 벌컥 화를 낸다. 김 부총리한테 “앞으로 정주영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한다고 해도 전부 다 거절하시오”라며 호통친다. 이어 침묵이 길게 깔린다. 대통령이 담배를 피워물고 정 회장에게 권한다. 정 회장은 흡연자가 아니었지만 분위기상 사양하지 못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총수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그래, 그거 하나 못하겠다고 정 회장이 여기서 체념하고 포기해요?”
현대건설은 조선소 건설을 준비하기 위해 1970년 3월 조선사업부를 만들었다. 정 회장이 기술 협조, 차관 도입, 선박 수주 등 관문을 하나 통과하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거북선 도안의 당시 500원짜리 지폐를 들어보이면 설명한 일 등은 잘 알려져 있다.
현대건설의 조선업 시작에 대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의 출처는 정주영 회장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정 회장이 박 대통령에게서 받은 것은 ‘파산 협박’이 아니라 결국 ‘가슴 뻐근한 감동’이었다.
저자의 주장과 당사자의 회고 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논외로 둔다. 다만 저자가 ‘협박’ 주장을 하려면 일차 자료인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을 인용한 뒤 “당사자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박 대통령에게서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했으나, 실제로는 협박이었고 그 진실은 이면에 감추어져 있다가 아무개가 어떤 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다”는 식으로 서술했어야 했다.
◇출처 확인은 문팩 파악에도 도움
출처 제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할 때에도 구체적으로 하는 편이 좋다. 적어도 어느 자료에서 해당 인용문과 그 맥락을 독자가 직접 살펴볼 수 있는지는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직접 출처를 확인하게 되고, 출처를 틀리게 대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된다. 또한 글의 문맥을 곡해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문장을 프루스트는 첫 책 〈기쁨과 나날과 “기억”〉(1896)에 썼다. 단편과 산문시, 산문을 모은 책이다. 영어로 번역된 제목은 ‘Pleasures and Days and “Memory”’이다. 이 문장은 ‘슬픔의 일시적인 효과’라는 글에 담겨 있다. 이 글은 국내에서 간행된 프루스트 책 중에는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에 편집됐다.
이 문장은 반전으로 이어진다. 프루스트는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한, 못됐거나 단지 무심한 여자 또는 매정한 친구에게는 더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루스트는 이 글의 방점을 비극의 효용에 찍었다. “비슷하게 비극이 우리에게 좋다”면서 “희극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박 수주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기술 제공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이 도와줬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딱한 처지를 들은 롱바톰 회장은 자기 처가의 고향이 그리스라면서 그리스 선주를 연결해보겠노라고 했다. 롱바톰 회장이 연줄을 수소문해보니, 자기 회사에서 영업맨과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가 영국 이튼고등학교 동기였다. 롱바톰 회장이 영업맨을 시켜 리바노스를 설득하게 했다. 그래서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로부터 현대건설은 조선소도 갖추지 않은 채 배 두 척을 주문받게 됐다.
서두에 배치한 예화의 출처를 드는 일을 잊을 뻔했다. 이 이야기는 밥 우드워드가 쓴 〈시크릿 맨〉에 나온다. 우드워드는 당연히 〈워싱턴포스트〉 면접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지방지에서 경험을 쌓은 뒤 〈워싱턴포스트〉에 경력 기자로 입사했고, 닉슨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추적 보도했고, 이 매체를 대표하는 기자로 성장한다. 추적 보도를 이끈 편집국 간부 중 한 명이 로젠펠트였다. 우드워드가 대기자가 될 수 있었던 기초는 호되게 깨지면서 배운 ‘출처 제시’가 아니었을까.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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