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고민할 때 만나 인생 전환점”…아슬리코 콩쿠르 덕에 세계 무대로
오는 28일부터 예선 시작, 9월 6일 결선
박준혁ㆍ김도연 전년도 우승…“성악가 첫 발 기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학교를 졸업하고 진짜 성악가로 첫발을 떼야할 때, 내가 정말 잘하고 있나, 음악을 쭉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던 때에 만난 첫 콩쿠르였어요.”
2001년생, 스물세 살이 된 신진 성악가 김도연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아슬리코 오페라 영 아티스트 콩쿠르 아시아 대회에 참가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1949년 창설된 아슬리코 국제 콩쿠르는 젊고 재능있는 오페라 가수를 발굴하는 ‘오페라 본토’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경연이다. 카를로 베르곤지, 레나타 스코토와 같은 유명 오페라 스타를 발굴, 지난해 장장 74년 만에 아시아인에게 콩쿠르 참가 기회를 열었다. 이번 아시아 대회는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진행, 이 대회에서 선발된 5명의 상위 입상자는 아슬리코 국제 콩쿠르의 세미파이널에 진출한다.
김도연은 지난해 아시아 대회를 통해 선발, 이탈리아 현지에서 열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공동 우승자 10명)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 콩쿠르를 통해 배역을 따낸 그는 오는 9월 이탈리아 현지 오페라 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에서 마르첼로와 무제타 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총 4개 극장에서 8회 공연이 예정돼있다.
음악계에 따르면 클래식 장르 중 성악은 유달리 지원과 후원이 미미한 분야다. 수천만원~수백억 원 대에 달하는 현악기 지원은 그것 자체로 투자 가치가 있으나, ‘사람의 몸’이 곧 악기인 성악은 투자 대비 효과가 없어서다.
특히나 대학 졸업 직후부터 프로 성악가로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의 시간은 이들에겐 ‘암흑기’와 다름 없다. 아슬리코 국제 오페라 콩쿠르가 의미있는 것은 차세대 성악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상금은 물론 이탈리아 본토 5개 극장에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준다. 더불어 차세대 오페라 가수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과정을 제공한다는 것도 큰 의미다.
김도연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아슬리코 콩쿠르에 참가해 좋은 기회를 얻었다”며 “콩쿠르 이후 석 달간 이뤄진 마스터클래스를 비롯한 트레이닝이 큰 도움이 됐다. 아슬리코 콩쿠르를 통해 오페라 가수로의 첫 발판을 마련했고, 이 한 번의 경험이 내겐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김도연과 함께 콩쿠르에서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바리톤 박준혁(27)은 오페라 ‘투란도트’의 핑 역으로 캐스팅돼 현지 관객과 만났다. 그는 “졸업 이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원래 이탈리아 유학이 꿈이었는데 경제적 문제와 여러 상황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며 “그 시기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데뷔 무대까지 마쳤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한 예비 성악가가 이렇게 바로 무대에 데뷔하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신기하고 하루하루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혁은 지난해 콩쿠르 결선에서 ‘실질적 1위’에 해당하는 청중상을 받았다.
김봉미 아슬리코 국제 오페라 콩쿠르 아시아 대회 위원장은 “이탈리아 현지 관객들이 모국어를 쓰는 자국 성악가가 아닌 동양인 성악가에게 최고의 점수를 줬다는 것이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며 “늘 언어의 벽을 마주하지만 한국의 성악가들은 다른 나라 성악가들과 확연히 차이 날 정도로 저력이 있다.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이런 기회만 얻는다면 세계를 제패하는 건 시간 문제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아시아 대회에서 선발된 입상자 5명은 본대회 참가 비용과 3만유로(약 44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본대회 참가 전 4주간의 인큐베이팅 지원, 내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기회도 얻는다. 지속적인 매니지먼트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특전이다. 박준혁 김도연은 콩쿠르를 먼저 거친 선배로서 올해 아슬리코 아시아 대회에 지원할 참가자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박준혁은 “한국인은 소리가 정말 좋고 음악을 잘하지만, 다소 뻣뻣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며 “노래 실력은 뛰어나지만 생동감 있는 연기가 아쉬울 때가 있어 부담을 내려놓고 무대를 즐긴다면 훨씬 유리할 거라 본다”고 말했다. 김도연도 “오페라 속 배역에 맞는 연기와 감정 표현에도 집중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응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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