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시로 성공한 부자들에 기회 뺏겨”… 경기 부진에 불만 커지는 中[Global Economy]

박세희 기자 2024. 8. 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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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Economy - 중국인들 빈부 인식 변화
‘부의 가장 큰 요인’ 설문조사
2023년 ‘관시’ 첫번째로 꼽혀
지난 10년은 ‘능력·재능’ 1위
가난 원인도 사회 시스템 지목
‘능력 부족 → 기회 불균등’변화
“5년전보다 가난” 응답자 급증
70%는 月소득 2000위안 미만
경기침체에 범죄·시위 등 증가
중국 산시성 시안 취장 국제콘퍼런스 센터에서 지난 2019년 3월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중국 청년들이 기업들이 마련한 부스에 적힌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나는 왜 가난할까. 부자가 되는 사람은 왜 부자가 되는 걸까.” 학자들은 한 국가에서 소득 수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보다 사회 구성원들이 그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쿠데타, 소요 등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불평등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중국 사람들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나의 가난, 타인의 부(富)를 개인이 아닌 시스템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 일당 체제에 꽤 위험한 방향으로 읽힌다.

◇“부자들은 ‘관시’로 부자 되고 나는 ‘불균등한 기회’ 때문에 가난” =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교수인 마틴 K. 화이트와 중국 전문가인 스콧 로젤 미 스탠퍼드대 중국경제센터 공동센터장이 함께 실시해 최근 내놓은 설문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점점 더 많은 중국인들이 부의 가장 큰 요인으로 ‘관시’(關係·인맥)를, 가난의 가장 큰 요인으로 ‘불균등한 기회’를 꼽았다. 조사는 지난 20년 동안 4차례(2004·2009·2014·2023년)에 걸쳐 중국인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중국인들에게 부자인 사람들은 왜 부자가 되는 것 같냐고 물었을 때 2004·2009·2014년 조사에서는 모두 ‘능력과 재능’이 1위를 차지했다. ‘열심히 일함’과 ‘관시’ ‘높은 교육 수준’ ‘더 많은 기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2023년 조사에서는 ‘능력과 재능’이 네 번째로 내려앉은 대신 ‘관시’가 첫 번째로 꼽혔다. 두 번째는 ‘부유한 가정환경’, 세 번째는 ‘더 많은 기회’였다. ‘열심히 일함’은 다섯 번째로 내려갔다. 관시와 부유한 가정환경, 더 많은 기회 모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로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좌절감과 패배감을 반영하는 결과다.

가난의 원인도 사회 시스템 탓으로 쏠리고 있다. 왜 가난한지 물었을 때 2004·2009·2014년 조사에서는 모두 ‘능력 부족’이 1위였다. 그 뒤를 ‘노력 부족’ ‘낮은 교육 수준’ ‘불균등한 기회’ ‘가족 배경’ 등이 이었다. 하지만 2023년 조사에서는 이 순위가 크게 바뀌어 ‘불균등한 기회’가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낮은 교육 수준’ ‘불공정한 경제 시스템’ ‘가족 배경’ ‘노력 부족’ ‘능력 부족’ 등이 이었다. 가난의 원인 1위로 꼽혔던 ‘능력 부족’은 여섯 번째로 밀리고 ‘불균등한 기회’ ‘불공정한 경제 시스템’이 1·3위로 올라온 것으로 가난의 원인을 나의 능력 부족, 노력 부족이 아닌 사회 시스템에서 찾는 셈이다.

“내가 부자가 되느냐 가난하게 되느냐는 나 자신의 책임이다”라는 진술에 동의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2004년 49%에서 2023년 27%로 떨어졌다. 반대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의 비율은 25%(2004년)에서 48%(2023년)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중국)에서 노력은 항상 보상받는다”는 말에 동의한 사람들의 비율은 62%에서 28%로 하락했다.

◇3분의 1이 “5년 전보다 더 가난”…소요 가능성에 ‘주목’ = 중국인들의 이러한 인식 변화는 점점 악화하는 경제 상황과 확대되는 빈부 격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경제 위기를 비롯해 중국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인들 스스로도 경기 침체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연간 5만 위안(약 940만 원) 미만을 버는 응답자의 32%가 5년 전보다 더 가난해졌다고 답했는데, 5만∼10만 위안을 버는 응답자의 24%, 10만 위안 이상을 버는 응답자의 19%도 더 가난해졌다고 답했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호황기였던 2009년 5만∼10만 위안을 버는 사람 중 5년 전보다 더 가난해졌다고 답한 비율은 단 1%였으며, 10만 위안 이상을 버는 사람들의 경우 5년 전보다 더 가난해졌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2004년 5%, 2009년 0%, 2014년 1%에 불과했다.

심각한 빈부 격차도 중국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北京)사범대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월 소득이 2000위안 미만인 사람이 중국 전체 인구의 70%에 가까운 9억6400만 명에 이른다. 중국의 경제적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니계수는 세계 최고 수준인 0.468(2020년 기준)이다. 화이트 교수와 로젤 센터장은 “파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때엔 불평등을 기꺼이 수용하지만, 경제가 흔들릴 때엔 불평등을 덜 수용하게 된다”고 했다.

경기 침체 속 경제적 불평등은 커지면서 극단적 선택과 묻지마 폭행, 범죄도 늘어나는 등 사회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도 경제적 원인에 따른 소요 가능성이다. 홍콩에 기반을 둔 중국 인권단체인 중국노공통신(China Labour Bulletin)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노동자들의 시위가 거의 1800건을 기록했다. 2022년의 두 배 이상이다. 미국의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올해 1분기에만 중국 내에서 온라인 시위를 비롯한 각종 시위 및 소요가 총 655건 발생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아예 중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향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남부 국경에서 구금된 중국인 불법 이민자가 3만7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무려 10배 증가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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