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하극상' 촉발한 예비역 연구소는 비어 있었다[위기의 정보사]
처음부터 유령연구소?…"건물주 관리사무실"
지난해 11월부터 충정로 비밀 사무소 이용 정황
"해당 연구소는 더 이상 이 번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담당자 연락처가 필요하신가요?"
지하철 5호선 군자역 8번 출구를 나와 대로변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연식이 오래돼 보이는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9일 본보가 찾은 이곳 4층 사무실 앞에는 가구업체 간판이 걸려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은 없었다. 초인종은 아예 없었다. 우편물 수취함에도 연구소 이름은 없고, '관리사무실' 명표와 함께 주변 가게 홍보 마그네틱만 가득했다. 포털에 등록된 번호로 연락을 했지만 다른 사무실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건물에서 만난 다른 층 사무실의 한 근무자는 "거기 (사무실)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없다"며 "건물 주인이 운영하는 사무실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 소유주는 이모씨. 파면 팔 수록 오리무중이다.
이날 본보가 찾은 사무실은 '군사정보발전연구소'로 알려진 곳. 최근 국군정보사령부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휘부 하극상' 사태의 진원지다. 정보사 여단장 B준장(육사 47기)이 "민간단체에 서울 충정로의 정보사 영외 비밀사무실, 안가를 빌려주는 건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사령관 A소장(육사 50기)에 반기를 드는 과정에서 언급됐던 바로 그 '민간단체'다.
군사정보발전연구소, 정보사 OB들의 기관
연구소는 2010년 국방부 승인을 받아 국내 유일의 군사정보 싱크탱크를 표방하고 있다. 초대 이사장과 현 이사장은 각각 서태석·조보근 전 정보본부장이다. 이사는 기무사령관, 777사령관 등 정보부대 출신 인사들이 맡았다. 말 그대로 정보부대 '올드보이(OB)'들이 뭉친 곳이다.
연구소 이력을 살펴보면, 군내 정보관리 및 정보운용 방안에 대한 자문 역할을 주로 해왔다. 최근 10년간 '첨단 정보능력 도입 및 운영방안 연구' '한국형 GEOINT(지리공간정보) 구축방향 연구' '제대별 국방정보화 연구'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자료들은 사단급 부대 이상 제대의 정보처와 정보학교에 주로 배포됐다.
정체불명의 정보사 비밀 사무실과 수상한 연구소의 '개소 성과'
그렇다면 이 연구소가 빌려 사용해 문제가 된, 소위 안가(安家)로 불리는 '충정로 비밀 영외 사무실'의 정체는 뭘까. 그 존재가 처음 공개된 건 정보사 여단장의 고소장을 통해서다. 여기에 연구소의 5월 28일 '전반기 이사회' 결과 자료에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연구소는 '충정로 사무실 개소'를 올 상반기 성과라고 적어놨다.
하지만 추가 설명은 없다. 군사정보발전연구소 등기부 등본이나 사단법인 자료를 뒤졌지만 따로 등록된 주소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정보사가 비밀리에 마련해 운영하는 사무소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연구소 관계자는 본보 문의에 "준비 중에 중단된 내용"이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흔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B여단장이 진급한 2023년 11월 말을 기점으로 연구소가 서대문에서 임원회의를 진행했다는 말이 돌았다. 특히 올 3월부터 지속적으로 서대문역 인근 충정로의 한식당에서 정기 임원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해당 식당 인근에 영외 사무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해당 식당은 군자동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꽤 연식이 있는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자체는 지난해 매출 4조 원대를 기록한 대형 식품업체의 소유였다. 이 업체의 계열사뿐 아니라 언론사, 시민단체 등이 입주한 곳이다.
민간단체 OB들은 왜 정보사 사무실을 이용하려 했나
눈에 띄는 것은 해당 한식당과 조 이사장 주소지가 근처라는 점이다. 조 이사장은 식당에서 도보 15~2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약해진 OB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영외 사무실이 전용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퇴역자들이 정부기관의 영외 사무실을 이용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연구소가 국방부 승인에 따라 영외 사무실을 이용한 것이라면 A사령관과 B여단장이 갈등할 이유도 없다. 이번 하극상 논란이 불거지자 국방부 정보본부는 연구소를 사무실에서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군사전문가는 "영외 비밀사무소라면 준군사통제구역인데, 비밀취급 인가가 없는 예비역들이 들락날락 거린다는 것 자체가 위법"이라며 "비밀인가가 이뤄졌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결국 사무실을 나온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기일 상지대 국가안보학부 교수는 "정부의 정보활동을 돕기 위해 영외 사무실을 이용하는 민간단체들은 가급적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편"이라며 "정보활동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기엔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해당 단체의 정보사 영외 비밀사무실 이용이 이상할 게 없다는 전직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의 전언도 있어 이 부분은 앞으로 국방부가 제대로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정보기관의 안가는?
'안전가옥(safe house)'의 준말인 안가는 "평범한 외양 때문에 은신이나 도피 또는 은밀한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안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건물"을 뜻한다. 정보기관의 활동을 위해 활용되는 비밀 사무소로서, 외관상 사적 장소로 보인다는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청와대와 안전기획부·기무사령부·검찰청·경찰청·서울시청 등 각종 정부기관이 안가를 소유했다. 특히, 기무사는 서빙고 분실과 송파구 장지동과 가락동 등에 안가를 설치해 주요 대공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안가들은 대폭 축소됐다. 다만, 정보기관들은 대북공작 및 외국 요원들의 정보수집 등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보 수집을 위한 안가 활용은 2012년 불거진 이른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댓글사건' 이후 제한되고 있다. 사건 당시 국정원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운영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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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정보사 하극상' 촉발한 예비역 연구소는 비어 있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1617240001576) - ② '금석 뚫는 충성심'은 옛말… 곪아 터진 정보사의 폐쇄성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1617360001108) - ③ 하극상에 요동치는 정보사... 암투 조장하는 예비역 단체의 그림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1807470003940)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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