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은은한 연잎향 솔솔…여름철 심신까지 맑아지는 ‘영양식’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 여름을 읊은 대목이다.
낚시에 나선 어부가 간단히 준비한 도시락은 연잎에 싼 밥으로, 더운 날씨에 상할 염려가 적을뿐더러 반찬을 챙길 필요가 없어 간편했을 것이다.
중국 광동지역에서는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넣고 다소 묵직한 맛의 연잎밥을 만든다.
향기로운 연잎을 벗겨 내면 콩·호두·연밥 등 고소한 맛을 내는 고명들이 쫀득한 찹쌀과 어울려 식욕을 돋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풍류가 선조들이 마신 연잎술
궁중선 연근으로 응이 만들어
연꽃차는 양귀비도 즐겨 마셔
찹쌀·견과 등 연잎에 감싸 쪄내
성인병 예방·노화 억제에 효과
부담없고 든든한 한끼로 제격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청약립(靑篛笠)은 써 있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백구는 내 좇는가 제 좇는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 여름을 읊은 대목이다. 낚시에 나선 어부가 간단히 준비한 도시락은 연잎에 싼 밥으로, 더운 날씨에 상할 염려가 적을뿐더러 반찬을 챙길 필요가 없어 간편했을 것이다.
농민에게도 연꽃은 친숙한 식물이다. 농한기 물을 댄 논에 연꽃을 기르면 연근과 연잎·연밥 같은 다양한 결과물들을 얻을 수 있다. 연꽃이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게 된 데는 이런 실용적 가치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된다.
청백리로 유명한 포청천에게는 연근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낙향한 포청천은 어느 날 연씨가 가득 든 주머니를 호수에 던졌다. 호수는 곧 연꽃으로 뒤덮였고 백성들은 흉년이 들면 연근을 캐 굶주림을 달랬다. 이곳의 연근을 자르면 나오는 실(絲)이 없고 맛있었다. 사람들은 실이 없는 이유를 사리사욕(私)이 없는 포청천의 정신에 빗댔다고 전해진다.
아삭한 식감이 매력인 연근은 녹말 성분이 풍부한 영양식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이른 아침 미음에 가까운 ‘응이’를 올렸는데 소화가 쉽고 탄닌·아미노산 등이 함유된 연근은 응이의 재료로 자주 선택됐다. 연근은 꿀에 조려 정과를 만들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연근 구멍에 찹쌀을 채워 쪘다가 식혀서 설탕을 찍어 먹는 간식이 있다.
연잎이나 꽃으로 만든 연꽃차는 양귀비도 즐겼다. 청나라 때 심복의 자전적 소설 ‘부생육기(浮生六記)’에는 어려운 살림에 지혜를 발휘한 운(芸)이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값싼 찻잎을 얇은 천주머니에 싸서 저녁 때 봉오리를 닫는 연꽃에 넣었다 다음날 아침 꺼내 차를 끓였다.
향뿐만 아니라 운치까지 있는 꽃차였을 것이다. 연꽃차 중에는 여름철 하얀 연꽃을 찬물에 담가 물을 끼얹어가며 시원하게 마시는 백련차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선조들은 여름철 연잎에 술을 담고 줄기를 빨대 삼아 향이 배게 하는 풍류를 즐겼다.
찹쌀에 각종 재료를 넣고 연잎으로 싸서 익히는 연잎밥도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별미다. 중국 광동지역에서는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넣고 다소 묵직한 맛의 연잎밥을 만든다. 차와 함께 먹는 ‘딤섬’ 메뉴 가운데 하나다. 반면 우리나라식 연잎밥은 콩과 팥·견과류·연근 등을 사용해 담백함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여름철에 채취하는 연잎에는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과 노화 억제, 콜레스테롤 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 연잎으로 음식을 감싸면 수분이 촉촉하게 유지되고 세균이 잘 자라지 못한다. 비닐봉지를 대신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연잎에는 심신을 안정시키면서 머리를 맑게 하는 성분도 포함됐다.
연잎밥은 한정식집이나 사찰음식 전문점에 가면 흔히 맛볼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청계산 인근 ‘보현재’는 연잎밥과 연잎숙성 보리굴비로 잘 알려진 맛집이다. 향기로운 연잎을 벗겨 내면 콩·호두·연밥 등 고소한 맛을 내는 고명들이 쫀득한 찹쌀과 어울려 식욕을 돋운다.
든든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한끼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