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 세계화, 개성상인이 다 했다고요? 조선총독부가 돈벌이 위해 전파한 겁니다"

권영은 2024. 8.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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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조선' 쓴 임채성 교수 인터뷰]
게티이미지뱅크·한국일보 자료사진

'하늘은 조국(일본)에 일대의 좋은 목장(조선)을 은혜로 베풀어 주셨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소를 두고 일본인들이 한 말이다. 일제는 매년 4만~6만 마리의 조선 소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전반기에 일본 전체 소 사육 두수의 15%가 조선 소였다. 그러는 사이 조선 소는 '열등'해졌다. 일본이 데려 간 소의 98% 이상이 우량한 암소였기 때문이다. "조선 소는 일본 소의 증식을 위한 보급원에 불과했다"는 게 임채성(55) 일본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의 분석이다.

임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살을 찌워 식용으로 쓰기 위해 조선 소를 데려왔다고 일본인들은 알고 있다"며 "소는 (농기구인) 트랙터의 의미도 갖는 만큼 단순히 먹기 위해 데리고 온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2, 3세짜리 조선 암소를 데려가 4, 5년간 일소로 기른 후 도살했다. 조선과 일본의 농업이 소를 매개로 더 깊이 연결돼 있었다는 뜻이다.


9가지 식재료·기호식품으로 분석한 식민경제사

이런 내용은 지난달 출간된 책 '음식조선'에 담겨 있다. 2019년 일본에서 나온 책을 임경택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번역했다. 조선 소(고기)와 쌀, 홍삼, 우유, 사과, 명란젓, 소주, 맥주, 담배 등 9개 식재료와 기호식품의 생산, 유통, 소비를 소재로 풀어 쓴 식민경제사다.

음식조선·임채성 지음·임경택 옮김·돌베개 발행·480쪽·3만2,000원

"일제강점기의 식문화를 산업사 관점에서 정리해보자는 게 (책을 쓰기로 한) 시작이었죠." 임 교수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자 '증거'를 중시하는 역사가로서 "일본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들"부터 책에 담았다.

이를테면 명태의 알을 염장한 명란젓(일본명 '멘타이코'). 대다수 일본인과 일부 한국인들이 일본이 원조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명란젓 특유의 감칠맛이 일본엔 없었다. 명란젓은 본래 함경도 특산물이다. 식민 조선에서 명란젓을 처음 맛본 일본인이 일본으로 들여간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맛이 됐다.


"명란젓=일본 전통 음식?... 함경도가 원조"

조선 재래 식재료가 제국의 시장에 포섭되는 과정은 "중립적일 수 없었다"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가내 공업이었던 조선의 소주 양조업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공장 생산 중심의 산업으로 커졌다. 임 교수는 "이 과정에서 조선의 영세 재래업자는 도태되고, 일본 자본 중심으로 (조선 소주 산업이) 전개됐다"며 "세수를 걷어 조선 통치 재원을 확보하고자 했던 총독부가 주도했다"고 말했다. 대량 생산된 소주는 총독부의 최대 세수원이 됐다. 근대화와 식민의 그늘이 동시에 확인되는 대목이다.

'음식조선'을 쓴 임채성 일본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 임 교수 제공

약탈경제로 일본이 수혜만 본 건 아니다. 조선인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만 입은 것도 아니다. 조선에는 농업 이민을 온 일본인을 통해 국광, 홍옥, 왜면 등 서양 사과가 유입됐다. 조선 사과 농업의 성장은 일본 주산지인 아오모리 사과를 위협할 정도였다. 임 교수는 "새 시장이 열리고 기술이 소개되자 조선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며 "조선인 과수원 전문 경영자가 나타나 품종 개량, 포장, 판매 등에 적극 나서면서 전체 생산량이 확 늘고 아오모리산 사과와 경쟁이 됐다"고 설명했다.

홍삼에도 오해가 얽혀 있다. 개성상인이 국제 교역을 통해 홍삼의 세계 진출을 이끌었다고 한국엔 알려져 있지만, 임 교수는 과거의 연구가 일제강점기 이후를 다루지 않으면서 개성상인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치 자금이 필요했던 조선총독부는 홍삼을 전매한 후 일본 종합상사인 미쓰이물산에 독점 판매권을 줘 재정을 확충했다. 홍삼은 미쓰이물산의 유통 채널을 타고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다.


"매일 먹고 마시는 일로 얽혀 있는 한국과 일본"

서울대 일본연구소 등 국내 대학에서 10여 년 머물다 2015년부터 릿쿄대에서 전후 경제사를 가르치는 임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만나는 곳에 서 있는 경계인"이다. 그는 "생존 또는 즐거움을 위해 매일매일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해 조선과 일본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고민해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는 "근대성은 식민성과 엉켜 이미 우리의 것이 됐다는 점은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다"며 "하지만 이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식민 조선의 음식 문화도 일본에 영향을 미쳐 현대 일본의 식문화에 뿌리내렸다"고 했다. 최근 K푸드에 일본의 관심에서 보듯 "식문화의 전파와 확산은 여전히 현재형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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