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와 장일순, ‘뒷것’이나 ‘보이지 않는 집’이나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무위당 장일순이 술자리에서 늘 부르던 노래가 ‘아침 이슬’이었다.
술 한잔 걸치고 원주천 둑방길을 걸어 집으로 갈 때도 ‘아침 이슬’을 부르면서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 김민기는 김지하를 통해 장일순을 만난 이후에 장일순의 집을 드나들었는데,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여읜 김민기는 장일순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따랐다고 한다.
장일순은 김민기가 지은 노래의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가사와 우리 정서를 담은 선율을 좋아했다. “그의 음악의 독창성이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땅을 딛고 있는 두 발에서 나오며 공동체의 어울림을 가능하게 해준다”면서 흐뭇하게 여겼다.
장일순이 ‘아침 이슬’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한참 한살림모임을 준비하던 1988년에 김민기한테 이런 먹글씨를 써서 주었다. “수없이 수없이 긴 밤 지새웠겠지만 그 아침 이슬을 겸손하게 배워야 하지 않어.”
김지하는 “쓰레기 더미 위에 시를”이라는 뜻의 ‘폰트라’ 모임에서 김민기가 부르는 ‘길’과 ‘혼혈아’ 등을 들으며 “그것은 그러나 노래가 아니었다. 차라리 아슬아슬하게 절제된 통곡이었고, 거센 압박 속에서 여러 가지 생채기로 배어나고 우러나는 깊디깊은 우울의 인광이었다”고 했다. 그는 김창남이 1986년에 처음 엮어 출판했다는 ‘김민기’(한울, 2004)에서는 더 또렷이 김민기의 노래를 평가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가 새 시대의 감성을 대변하는 뛰어난 음유시인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쓸쓸함, 맑음, 쾌활함, 이 세 가지였다. 버림받은 외로움과 슬픔, 그 가없는 쓸쓸함을 관통하는 티없는 맑음 때문에 어둠은 오히려 씩씩한 쾌활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의 노랫말에는 죽음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으면 부활의 기쁨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침 이슬’의 마지막 소절은 “약속과 창조의 땅으로 나아가는 고달픈 유랑민의 복음이었다”고 극찬한다. 어느 날 문득 저항가수로 알려지고, 공장에서 일하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김민기는 “섣불리 제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잘 새겨 아름다운 화해의 세계로 이끄는 미덕”을 가진 성공한 사람이라고 김지하는 말한다. 음악뿐 아니라 삶에서도 개성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장일순의 생각을 발전시켜 ‘밥’과 ‘남녘땅 뱃노래’를 통해 생명사상의 집을 지은 사람이 김지하였다면, 김민기는 자신의 삶으로 한밤이 낳은 그늘을 거두어 아침 이슬로 맺힌 예술을 빚어냈다.
김민기는 전북 익산과 김제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1983년에 동학혁명을 다룬 연극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를 연출할 때도 경기 연천 전곡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1989년 장일순, 박재일, 김지하, 최혜성 등이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한살림모임을 창립할 때 김민기는 초대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뒷것’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학전’을 거쳐 간 배우들에게 김민기가 곧잘 “너희들은 ‘앞것’이고 나는 ‘뒷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배우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자신은 어두운 무대 뒤에서 받쳐주겠다는 뜻이겠다.
가수 양희은의 뒤에도 김민기가 있었고, 그래서 양희은은 김민기에게 ‘석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구는 ‘구석’을 뒤집은 말이다. 몇 안 되는 인터뷰에서도 김민기는 ‘어쩌다 (…) 그리 되었노라’ 말한다. 자기 작품이 벗어놓은 ‘묵은 내복’처럼 부끄럽다 말한다. 그래서 어느 기자는 “‘뒷것’ 김민기 뒤에 장일순이 있었다”고 했다.
그 장일순에게도 ‘뒷것’마냥 호가 있었다. 처음엔 ‘호암’(湖岩)이었다가 ‘청강’(靑江)이었다가 지금은 ‘무위당’(无爲堂)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말년에 붙인 호는 ‘좁쌀 한알’이라는 뜻의 ‘일속자’(一粟子)와 ‘이암’(夷菴)이었다.
‘이암’이란 곧바로 번역하면 오랑캐의 집, 편안한 집이지만 ‘보이지 않는 집’이라는 뜻도 지녔다. 장일순은 “사람이 보이는 것만 너무 하면 재미가 없어. 안 보이는 가운데 생활하는 그런 사람이 좋은 거야” 하였다. 이게 뒷것이다. 장일순과 김민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뒷것’으로 머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행복한 사람이었다.
한상봉/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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