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영정 앞에 술 올린 윤석열?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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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만약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에 용감한 투사가 되어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 한 잔을 부어놓아라" 1932년 12월19일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의 그 깊은 뜻을 담은 술 한 잔 올려드립니다.' 3년 전인 2021년 8월15일, 누군가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윤봉길 의사의 뜻을 담아서 안중근 의사에게 술을 올리는 거 저만 이상한가요."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도 구분 못하나윤석열 역사 인식 또 논란'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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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만약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에 용감한 투사가 되어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 한 잔을 부어놓아라…” 1932년 12월19일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의 그 깊은 뜻을 담은 술 한 잔 올려드립니다.’ 3년 전인 2021년 8월15일, 누군가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광복절#윤봉길#안중근#김구’라는 해시태그도 달렸다.
그 누군가란, 윤석열 대통령이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광복 제76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를 찾았다. 그 후기를 밝히려, 앞서 인용한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안중근 의사 영정 앞에 술을 올리는 사진이었다.
잠깐, 이상한 점 발견하신 분? 당시 한 야권 인사의 페이스북 글 속 한 문장이 힌트다. “윤봉길 의사의 뜻을 담아서 안중근 의사에게 술을 올리는 거 저만 이상한가요.”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도 구분 못하나…윤석열 역사 인식 또 논란’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윤 후보가 부산 민주공원에서 이한열 열사 조형물을 보고 “이건 부마항쟁인가요”라고 묻는 장면이 찍힌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싸한 느낌은 왜 늘 틀리지 않는 걸까. 그로부터 3년 뒤, 역사 인식까지 갈 것 없이 ‘상식’ 수준에서 입이 딱 벌어질 수준의 사건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정부 산하 3대 역사 연구 기관으로 불리는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수장 자리는 일찌감치 식민지근대화론 등으로 무장한 뉴라이트 인사들이 차지했다. 급기야 최근 신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김형석씨는 취임 일성으로 ‘친일파 명예 회복’을 외쳤다. 또한 ‘1948년 건국설’이 옳으며 여기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의 생각은 ‘분단 사관’이라고,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는 주장은 “일종의 궤변”이라고 자신의 저서에 적었다. 김 관장의 선임 절차에 관여한 독립기념관 이사 중 한 사람은 낙성대경제연구소라는 뉴라이트 성향 단체의 소장이었는데, 그 연구소 출신 한 인사는 최근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구가 테러의 수괴였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3년 전 윤석열 대통령은 7인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술을 올리고 그들의 정신을 기린 것일까? 그날 윤 당시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끝맺는다. “상식에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꿈을 멀게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그날의 말이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대선 승리를 위한 사기극이었을까. 애초 이럴 계획이었을까, 아니면 3년 사이 자아분열이 일어나고 만 걸까···. 이런 질문들도 이제는 별 소용없이 느껴질 만큼, ‘상식’은 아득히 멀리 가버렸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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