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시스템을 읽는 ‘리터러시’ [새로 나온 책]
뒤틀린 한국 의료
김연희 지음, 산지니 펴냄
“‘올바른 정책’과 ‘그 정책을 현실에 안착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2021년 기준 건강보험 진료비는 95조4000억원이다. 국방비 총액의 두 배에 달하는 돈이다. 건강권은 기본권이고, 보건의료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 그만큼 쉽게 취약해진다. 의대 증원 문제, 지역의료 및 공공의료 붕괴 등 한국 사회 보건의료를 둘러싸고 수년째 이어지는 혼란을 묵직한 집중력과 치열함으로 기록했다. 공동체에 필요한 질문을 성실하게 모았다. 현장과 전문가, 그리고 시민을 연결해온 기자의 시선이 보건의료 시스템을 읽는 ‘리터러시’를 길러준다. 진료는 전문의료인의 영역이지만, 보건의료체계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함께’ 안에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있다.
뽕의 계보
전현진 지음, 팩트스토리 펴냄
“현실의 마약왕은 상상과 달랐다.”
2023년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2만7611명. 사상 최초로 연간 마약사범이 2만명을 넘어섰다. 마약류는 법에 따라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로 나뉘는데, 히로뽕은 향정신성의약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향정사범’은 마약류 사범의 70.8%를 차지한다. 히로뽕이 마약 중의 마약인 셈. 이 책은 〈경향신문〉 경찰청 담당 기자가 ‘발로 뛰어’ 쓴 논픽션이다. 웹소설·논픽션 기획사 팩트스토리와 경향신문사가 공동 기획했다. 히로뽕 ‘비즈니스’ 60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히로뽕 업계’에 몸담았던 사람들 30명을 취재했다. 수감 중인 사람들과는 옥중서신을 주고받았고, 교도소나 재판을 찾아갔다. 판결문을 확인하는 등 교차 검증을 했다.
그라피티와 공공의 적
최기영 지음, 호밀밭 펴냄
“공공기관에서 그라피티를 한다고요?”
그라피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담벼락이나 셔터 위에 누군가 애써 그린 그림을 지우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덧입히고 닦아낸 흔적들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그라피티를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로 인정하는 기류가 형성됐지만, 우리에게 ‘그라피티가 낙서인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공공미술이 변화를 시도했다. 그라피티 아트를 통해 주한미군 기지촌이었던 경기 동두천시와 평택시, 시화지구 개발로 인해 정주민을 잃어야 했던 경기 시흥시 오이도 등 상처 입은 공간을 치유한 과정을 세세히 담았다. 예술로서의 그라피티가 가진 가능성과 미술의 공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수학은 알고 있다
김종성·이택호 지음, 더퀘스트 펴냄
“수학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인간이 틀릴 뿐이다.”
세계의 운동에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의사 결정들을 대충 처리하거나 운명에 맡기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자연 세계는 물론 인간의 문명에도 패턴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수학을 제시한다. 수학은 살다 보면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과 현상을 잘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모두에게 필요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예측, 회귀분석, 딥러닝, 확률, 지수, 예측 모델 등 6단계로 나눠 심오하지만 쉽게 설명해주는데 ‘저 문제가 이렇게 수학과 연결되는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개인적으론 ‘인공지능이라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수학책’을 권한다. 오죽하면 인공지능이 일종의 통계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겠냐고?
불안 세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불안 세대는 사회적 질병이다.”
2010년 즈음 모든 게 바뀌었다. 안정되던 10대의 정신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고 불안, 우울증, 자해 등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바른 마음〉의 조너선 하이트는 이 시기를 주목했다. 바로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기다. 어른도 아이도 SNS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아동기 대재편’도 일어났다. ‘놀이 기반 아동기’에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전환된 것. 테크기업이 만든 소셜미디어의 유해성은 이제 널리 알려진 것 같지만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저자는 ‘불안 세대’의 탄생을 알리며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모두 디지털 기술과 회사의 탓은 아니다. 과잉보호와 디지털 방임이 불러온 참사에 가깝다.
스무 낮 읽고 스무 밤 느끼다
박완서 외 지음, 마음산책 펴냄
“밥상에는 여섯 개의 계란프라이가 올라왔다. 크리스마스잖아.”
1970년에 등단한 박완서부터 2020년 등단한 이유리까지 작가 스무 명이 다채로운 손바닥 소설을 썼다. 화자는 아이였다가 우주인이 되기도, 클론이 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남긴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있다가, 행성들을 화분에 키우는 우주의 베란다로 뛰어오르기도 한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꼭 전하고 싶었던 한 장면을 포착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고 싶었던 문장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결국 가장 단순한 문장만 남는다. 정이현의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읽고 눈물이 살짝 났다. ‘고작’ 몇 장의 이야기가 이렇게 힘이 세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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