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서비스 종료되면 물건 생명도 끝나는 걸까 [프리스타일]

신선영 기자 2024. 8. 20. 06:3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입던 옷에 문제가 생기면 할머니 재봉틀 아래로 가져가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있는 '수리상점 곰손(이하 곰손)'을 취재하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생전에 할머니는 내가 재봉틀을 가져가서 쓰면 좋겠다고 하셨다.

장례를 치른 후 1950년대에 생산된 할머니의 재봉틀을 차에 싣고 서울 집으로 향하며 재봉 수업을 알아봤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서울 마포구 망원동 수리상점 곰손에서 곽성규 강사가 우산 수리 수업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입던 옷에 문제가 생기면 할머니 재봉틀 아래로 가져가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의 ‘금손’으로 통했다. 가족들의 베개 커버뿐만 아니라 며느리들의 한복도 직접 만들었다. 교복 치마 유행이 ‘A’ 형태에서 ‘I’로 바뀌면 할머니를 졸라가며 수선 비용을 아꼈다. 구멍 난 옷이나 양말을 버리면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어릴 적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구멍 난 양말을 한데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있는 ‘수리상점 곰손(이하 곰손)’을 취재하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처음 그곳을 방문한 날, 영등포구 시니어클럽의 곽성규 강사(74)가 수강생들 앞에서 우산 수리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8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20대 수강생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걸려서 왔다며, 이런 곳이 또 있는지 나에게 묻기도 했다. 외국에 거주할 때 곰손과 비슷한 ‘리페어 카페’를 봤다고도 말했다.

‘기후위기를 건너는 일상생활 기술을 나누는 곳’을 표방한 곰손은 1인 가구를 위한 전기 수리, 소형 가전제품 수리, 아이폰 배터리 교체, 재봉 수업 등 워크숍을 열고 있다. 고쳐서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공간과 함께 각종 공구도 대여해준다. 주말 워크숍에는 아빠에게 선물받은 장난감을 고치러 온 아이부터 오래된 계산기, 만원짜리 손 선풍기를 가져온 이들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수리할 권리’를 곰손을 통해 알게 됐다. 일부 유럽에서는 제품에 ‘수리 가능성’ 등급을 부착해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으면 벌금을 매기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쉬운 세상에 수리가 권리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물건은 쉽게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저렴한 제품은 고치기보다 새것을 주문하는 편이었다. 판매사가 지정한 센터가 아니면 수리하기 어려운 제품도 가지고 있다. 수리 서비스 종료와 함께 그 물건의 생명도 종료되는 걸까.

돌아보면 어릴 적 ‘짠내 나는 기술’ 정도로 생각했던 할머니의 능력은 일상생활의 기술이었다. 올해 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생전에 할머니는 내가 재봉틀을 가져가서 쓰면 좋겠다고 하셨다. 장례를 치른 후 1950년대에 생산된 할머니의 재봉틀을 차에 싣고 서울 집으로 향하며 재봉 수업을 알아봤다. 언젠가 버리는 옷을 재활용하고, 가족들의 해진 베개 커버를 새것으로 바꿔줄 수 있는 기술이 생겼으면 좋겠다. ‘멋진 일상생활 기술’ 말이다.

수리상점 곰손에서 열린, 자투리 천을 이용한 ‘재봉틀 모임’에 온 참가자가 가방을 만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